신라고도 경주에서 안압지와 용강동 원지(苑池)에 이어 3번째 원지가 확인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13일 "경주시 구황동 292-1번지 분황사 동편 외곽의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부지내 유적에 대한 발굴과정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원지와 축대, 배수로, 정원의 외곽 담장, 우물 등 중요유적과 금동판불등 각종 유물을 확인, 조사중에 있다"고 밝혔다. 경주문화재연구소는 원지내에는 2개의 인공섬과 180m 길이의 호안석축으로 구성된 연못 유구를 비롯해 출수구, 배수시설, 담당 출입시설 등이 있고, 건물지가 밀집한 서북편에는 담장으로 구획된 각각의 가옥내에 통일신라시대 건물지 1-2채와 그에따른 마당, 보도, 우물 등이 세트로 구성돼 당대의 가옥구조를 규명할 수 있는 학술자료가 확보됐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출토된 유물은 귀면와(鬼面瓦), 연화문(蓮花文)막새 등 기와와 벽돌류444점, '관병(官甁)'이라 새겨진 토기와 그릇 67점, 금동제(金銅製) 판불(板佛) 등금속제 26점, 활석제 용기 등 총 545점에 달한다. 연못의 입수구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동남쪽 어딘가로 추정되며 서쪽 중앙에 'Γ'자 형태로 도랑 모양의 출수구가 돌출해 물이 빠져나가도록 시설됐다. 연못의 전체 규모는 1천75㎡로 안압지 면적의 약 1/15에 해당했다. 북쪽의 큰섬은 둘레 66m, 면적 371㎡의 부정형이며 남쪽의 작은섬은 둘레 47m,면적 190㎡이다. 경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발굴유적 및 출토유물로 보아 이 원지는 통일신라시대인 7세기 후반 이후에 설치됐고 8-9세기대에 건물지붕의 기와를 새로 이는 등잘 유지되다가 신라가 망하면서 퇴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원지가 조성된 시기는 '삼국유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원지와 관련된 사료와 발굴유물로 미뤄볼 때 7세기 중엽 분황사가 왕실원찰(王室願刹)로 창건된 이후로,어느 일정한 시기에 완성된 분황사의 동쪽 연못으로 추정됐다. 축대 위쪽의 전각에서 연못을 바라볼 때 눈에 띄는 작은섬 주위에 대형 석재와괴석 등 조경석을 집중배치했고, 큰섬 주위엔 소형 냇돌이 질박하게 축조되는 등 자연지형에 순응해 조형성과 예술성이 뛰어난 것이 이 연못의 특징이다. 경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신라왕경의 중심부에 위치한 이 유적은 7세기 중반축조된 안압지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자연미와 인공의 적절한 조화, 뛰어난 조경미,신라인의 예술성에서 중요성이 뒤지지 않는 귀중한 유적"이라고 말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이날 원지 발굴현장에서 문화재위원들을 중심으로 지도위원회 및 현장설명회를 열고 앞으로 발굴조사 방향을 검토했다. (경주=연합뉴스) 홍창진기자 realism@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