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병천(45)씨가 단편집으로는 10년만에 소설집「홀리데이」(문학동네)를 냈다. 소재의 다양함과 흐름의 경쾌함, 삶과 사회를 바라보는 진지함을 두루 갖추고 있어 소설 미학의 진수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작품집이다. 표제작은 1980년대 말 `무전유죄, 유전무죄'란 조어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탈주극을 소재로 삼았으며 당시 출동했던 경찰관이 화자로 나오고 그가 인질이었던여성과 나중에 결혼한다는 허구적 설정이 추가됐다. 아내는 인질극에서 입은 정신적 상처에 시달린 나머지 없던 도벽(盜癖)이 생겨 물건 훔치기를 일삼지만 주인공 `나'는 결국 이를 이해하고 감싼다. 도벽으로 대변되는 개인의 행동은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아픔인 것이다. 는 얼마 전에 있었던 어느 여가수의 섹스 비디오 파문을 소설화했다. 여가수의 무명 시절 또 다른 매니저였던 화자는 비디오로 고통받는 여가수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자신이 갖고 있던 둘만의 비디오를 태워버린다. 그리고 스스로 묻는다. "어차피 모든 존재는 혼자가 아니던가." 단편집에는 이밖에 이성간 교접으로 비유되는 바둑 고수들의 대국, 해고 뒤 복수를 꿈꾸는 무능한 서점 영업사원, 여자를 유혹하는 방법에 매달리는 한 남자의 자의식, 식물 인간이 된 남편에 살인 욕구를 갖는 여자, 사이버 섹스 등 다채로운 소재를 다룬 9편이 더 들어 있다.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도 섬세한 언어구사로 경쾌하게 이야기를 끌어가기에 한번 눈길을 주면 막힘없이 서사의 진행을 따라 잡을 수 있다. 현학적 수사를 동원한 관념성이나 어떤 주의ㆍ주장을 은근히 내비치려는 어색함도 물론 없다. "깔끔한 문장과 단단한 구성, 유연한 이야기의 흐름이 돋보이는데, 이런 덕목은 삶과 세계에 대한 깊은 사유와 천착이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소설가 이청준). (서울=연합뉴스) 이성섭 기자 lee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