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학원에서 웹디자인까지 전공한뒤 입사지원서를 60여개사에 냈지만 취업에 실패했습니다"(서울 S여대 졸업생) "박사학위를 받으면 뭐합니까. 취직이 안돼 아내와 어린 딸에게 미안할 뿐인데..."(서울 Y대 공학박사) 지난 9월의 실업률이 97년 이후 최저치인 3.0%에 머물렀지만 한국경제에 드리워진 암울한 실업의 그림자는 좀처럼 걷히지 않고 있다. 국내 경기가 세계경제와 동반 침체중인 상황에서 미국의 테러전쟁까지 발생, 취업대란이 재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졸업장이 곧 실업자증명서'인 현실 앞에서 대졸예정자와 대졸자 등 청년들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좌절부터 맛보고 있다. 가정을 책임져야 할 중년 남성도 실직의 충격 속에 길거리를 떠돌고 있다. 1년 이상 직장을 구하지 못한 9만7천여명의 장기 실업자들에게 취직은 '남의 일'이 된지 오래다. 정부는 경기 부양과 실업 해소라는 두마리 토끼를 쫓고 있지만 얼어붙은 경기로 인해 숨어버린 일자리들은 좀처럼 머리를 내밀지 않고 있다. 심각한 고학력자 실업 =4백명의 대졸 신입사원을 뽑기 위해 최근 입사원서 접수를 마감한 SK그룹에는 2만4천5백명이 몰려들어 60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99년과 지난해의 경쟁률(40~50 대 1)보다 크게 높아진 것이다. 그만큼 대졸 취업문이 좁아졌음을 의미한다. 90년대 이후 입학한 대학생들은 스스로를 '불운한 세대'라고 부른다. 한국경제신문과 KBS가 공동으로 개최중인 'TV취업센터 채용박람회'에 참가했던 94학번 황모씨는 "같은과 여자 동기생들은 외환위기로 직장을 못 구했고 군 복무를 마친 나도 백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업은 94학번만이 아닌 90년대 학번 전체에 떨어진 발등에 불"이라고 자조했다. 실제로 지난해 8월과 지난 2월 서울대 졸업생 3천8백68명중 28.4%인 1천99명은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고려대와 연세대도 지난 2월 현재 순수 취업률이 각각 49%와 56.5%에 그쳤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졸 이상 실업자는 지난 9월 18만2천여명(실업률 3.3%)에 달했다. 전체 실업률보다 0.3%포인트 높다. 8월보다 1만8천여명 정도 줄었으나 지난해 9월에 비해서는 3천여명 증가했다. 그만큼 대졸 취업재수생들이 쌓이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다 고시를 준비하거나 군 입대 등으로 취업을 연기한 사람까지 포함한다면 고학력 실업자는 셀수 없을 정도로 많아진다. 일자리 없는 청소년 =지난 9월 현재 구직활동에 나선 청소년(15~24세)중 17만3천명이 일자리를 찾는데 실패했다. 지난 8월과 비교해 7천여명 늘었다. 전체 실업자가 줄어든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에 따라 대졸 이상자를 포함한 청소년 실업률은 8월보다 0.8%포인트 증가한 8.6%에 달했다. 전체 실업률(3.0%)의 2.8배를 넘는다. 일하고 싶어도 놀수 밖에 없는 청소년들이 많다는 얘기다. 기업들이 경험을 갖고 있어 즉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사원을 선호한데 따른 결과로 분석된다. '중년의 아픔' 실업 =40~50대 중장년층은 IMF 경제위기에 따른 실업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았다. 지난 97년 말만 해도 9만7천명에 불과했던 중장년 실업자는 구조조정이 본격화된 98년 말 50만8천명으로 늘어났다. 지난 99년 3월에는 56만3천명으로 정점을 이뤘다. 가계를 책임진 가장의 실업으로 2백여만명이 함께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뒤 중장년 실업자는 차츰 줄었지만 여전히 20만명을 넘고 있다. 지난 9월의 중년 실업자는 21만1천명으로 8월보다 3만명 줄었다. 그러나 9월중 전체 실업자가 30.8%가 40,50대였다. 실업에 따른 고통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것이다. 이태희 노동부 실업대책추진단장은 "청소년에 비해 중장년층은 일단 실직하면 재취업하기가 쉽지 않다"며 "이들을 원하는 기업도 거의 없어 문제가 심각하다"고 밝혔다. 갈곳 없는 여성들 =지난 9월중 여성실업자는 23만1천명으로 전달보다 1만3천명 감소했다. 지난 7월 이후 실업자 증가세가 한풀 꺾인 것은 서비스직의 일자리 증가에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여성에게 정규직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임시직이나 일용직 자리라도 '감지덕지'다. 임금을 받는 여성 근로자 5백51만9천명의 67.7%인 3백73만8천명이 임시직이나 일용직이다. 남성 근로자(40.0%)와 비교조차 안된다. 이만큼 여성근로자가 취업하기 어렵고 좋은 여건에서 근무하기는 더욱 힘들다는 얘기다. 김도경 기자 infof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