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레같은 박수 속에 막내리는 연주회. 그 화려한 무대 뒤에서 시종 긴장과 싸우는 공연기획자는 말 그대로 '무대 뒤의 인생'이다. 정재옥 크레디아 사장(40)은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전당 관계자들이 첫 손가락으로 꼽는 공연기획자다. 그는 지난 94년 크레디아를 설립한 이래 매년 30여차례 국내외 주요 아티스트들을 무대에 올렸다. 공연 횟수면에서나 공연자 수준에서 단연 정상급이다.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 소프라노 신영옥과 바버라 헨드릭스, 러시아국립오케스트라 등 세계 정상급 연주자와 연주단체들의 국내 공연을 성사시켰다. 특히 러시아 국립오케스트라는 외환위기에 시달리던 지난 98년 유일한 초청공연으로 국내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의 진가는 연간 기획공연의 20~30%를 신인 무대에 할애하는 데서 뚜렷해진다. 피아니스트 미아정, 첼리스트 피터 비스펠베이 등의 공연을 기획했고 올 가을에는 바이올리니스트 프랑크 페터 짐머만 등의 연주회를 올릴 예정. 신인무대는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하고 미래스타를 키울 수 있는 일종의 투자. 하지만 가뜩이나 위축된 국내 공연시장에서 신인무대는 예외없는 적자사업이다. 때문에 크레디아는 연간 매출이 15억~20억원에 달하지만 적자를 간신히 면할 정도의 재무구조를 꾸려 왔다. 정 사장은 "공연기획은 예술에 대한 열정을 담보로 한다"며 "돈을 벌려면 다른 사업을 찾아 보는게 현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기획은 컴퓨터와 디지털기기로 대체될 수 없는 휴먼터치 사업이다. 가내수공업적인 1회용 상품이지만 연주자에 따라 '명품 브랜드'로 거듭나기도 한다. 그는 "공연기획자로서 명품을 탄생시키는 순간의 기쁨과 보람은 말할 수 없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 85년 중앙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정 사장은 중앙일보 문화사업부에서 10여년간 공연업무를 익힌 뒤 독립했다. 학창시절 예술경영은 국내에 도입되지 않았기에 그는 독학으로 실무를 익혔다. 그는 공연기획자가 갖춰야 할 자질로 '인내심과 신뢰감'을 꼽았다. 연주자들과 오랜 관계 속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쌓여야 이 일을 계속해 갈 수 있기 때문. 연주자 매니저 음반사 등과 인적 네트워킹을 형성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데 그 기본은 믿음이다. 그는 여건 변화로 손해를 보게 되더라도 계약사항은 반드시 이행하고 연주자들이 숙식 등에서 최상급 대우를 받도록 꼼꼼하게 챙겨 준다. 공연기획에는 국제사업에 필요한 어학과 지식도 필요하다. 외국 연주자들과의 접촉 계약 입국 리허설 공연 등 여러가지 과정에 모두 개입해야 하기 때문. 유명 연주자들의 내한 공연은 대개 2년 정도가 걸린다. 일단 네트워킹이 형성되면 연주자 쪽에서 먼저 아시아 순회일정을 알려 오기 때문에 업무가 한결 수월해진다. 그가 주로 손대는 클래식공연은 팝공연에 비해 마진이 적지만 위험도 적다. 많지 않지만 고정팬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클래식공연으로 순수문화 영역을 지킴으로써 저질문화 침투를 차단하는데 긍지를 갖는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