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1시10분 서울 혜화동 천주교 성당. 20분 후에 열리는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필리핀 근로자들이 속속 모이기 시작했다. 미사가 시작될 쯤엔 1천여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타갈로그어나 영어로 기도문을 외우고 성가를 불렀다. 성당 주변에는 필리핀 신문이나 음식을 파는 필리핀 노점상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근로자들은 미사를 마친 후 한국에서의 인생살이와 고국 소식 등을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오후 3시께 성당 문을 나섰다. 일부는 혜화동 YMCA체육관에서 농구 탁구 줄다리기 다트 등을 즐기거나 근처 필리핀 음식점을 찾았다. 지난 2주간 자선콘서트 등으로 인해 미사가 열리지 않아 오랜만에 얼굴을 봤기 때문인지 이들은 평소보다 늦은 오후 6시가 넘어 헤어졌다. 낯선 이국땅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외국인들에게 교회나 성당은 마음의 안식처다. 먼길도 마다하지 않고 경기도에서 '원정예배'를 오는 경우까지 있다. ◇서울에만 20곳 이상=한국교회 외국인노동자선교협의회 등 종교계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가 자주 모이는 종교단체는 서울에만 20곳 이상에 달한다. 혜화성당은 재한 필리핀인의 '삼바야난'(공동체)으로 자리를 굳혔다. 필리핀 출신으로 근로자의 인권개선에 힘써온 글렌 지오바니 하론(37·한국명 장요한)신부가 담임신부를 맡고 있어 상담하기 위해 성당을 찾는 필리핀인도 많다. 신문로 새문안교회는 베트남인들의 집합소로 유명하다.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께면 베트남인 2백여명이 모여든다. 마장동 한양교회는 몽골인의 쉼터다. 구의동 서울외국인근로자선교회의 경우 적을 걸어두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는 2천명을 넘는다. 구로동 갈릴리교회와 명일동 명성교회는 중국 몽골 필리핀 파키스탄 등 아시아지역 9∼10개국 출신 근로자 3백∼4백여명의 안식처 역할을 한다. 명성교회 권정우 전도사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교회나 성당은 종교적 목적외에 취업정보 의약품 식사 등 한국생활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 근로자의 안식처=교회를 찾는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월 50만∼60만원의 저임금을 받고 3D업종에서 일하면서 월세 10만∼12만원짜리 쪽방에 사는 경우가 많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산업연수생으로 왔다가 불법체류자 신세가 된 근로자도 있다. 한양교회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교회는 '강제추방'과 '한국인의 냉대'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교회에선 지역주민과의 마찰 조짐이 생기고 있다. 혜화성당은 인근 주민들이 '필리핀인들이 동네 이미지를 망친다'며 파출소에 민원을 제기하는 바람에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서울외국인근로자선교회의 유해근 목사는 "아시아계 근로자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봐서는 안된다"며 "사회적 약자인 그들과 더불어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