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국제통화기금(IMF) 총회, 세계광고대회, 만국우편연합(UPU) 총회... 세계 각국의 최고 전문가들이 모이는 국제회의들이다. 일반인들이 언론매체 등을 통해 접하는 국제회의장 분위기는 마치 호수위에 떠 있는 백조와 같다. 겉으로는 수천명의 유명 인사들이 세미나실에서 헤드폰을 낀채 발표자의 말에 귀기울이고 안정된 분위기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는 등 회의는 늘 깔끔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그 사이 무대 뒤에선 긴장된 눈빛으로 회의장 곳곳을 살피는 사람들이 있다. 다름아닌 국제회의기획사(PCO.Professional Conference Organizer)들이다. 이들은 프로그램 기획에서부터 조직위.스탭 구성, 항공.숙박 알선,개.폐회식 의전 등에 이르기까지 회의와 관련된 전 과정을 챙기며 쉴새없이 움직인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의 컨벤션팀장을 맡고 있는 윤승현(42)씨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국제회의기획사다. 그는 코엑스에서 열리는 모든 국제회의를 주관하고 있다. "국제회의는 일종의 공간예술이기 때문에 '끼'가 있어야 합니다. 순간의 자그마한 실수도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수천명이 하나의 주제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려면 적어도 2~3년 전부터 준비를 시작해야 하죠" 윤 팀장은 행사가 열리기 2~3일 전부터는 꼬박 날을 새가며 완벽한 준비를 한다. 그래도 막상 행사가 시작되면 피를 바싹바싹 말리는 순간들이 부지기수다. 지난 95년 열린 세계광고대회 때의 일이다. "폐막식 행사였는데 다음 개최국인 이집트 대통령의 환영인사를 녹음해 왔더군요. 그런데 슬라이드를 돌리려는 순간 기계가 작동하지 않는 거예요. 사흘 밤낮을 전국으로 뛰어다닌 끝에 결국 테이프에 맞는 설비를 찾기는 찾았습니다" 그는 하나 밖에 없는 원본 테이프에 손상이라도 가지 않을까 애를 태워야 했다. 대통령의 얼굴이 흔들리기라도 하면 대통령과 그 나라 국민에게 되돌리지 못할 실수를 하는 것이기 때문. 회의가 끝난 뒤 그는 정산이나 세금계산서 작성 등으로 다시 며칠 밤을 지새우곤 한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윤 팀장은 88년 코엑스에 입사해 처음엔 국내전시를 담당하다 92년부터 국제회의를 맡았다. 당시만 해도 국제회의와 관련된 교육과정이 전혀 없어 미국 유럽 등에서 발간된 서적을 구해 독학을 해야만 했다. 이후 필리핀에서 국제회의전문가협회(ICCA)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등 나름대로 전문성을 길러온 그는 지금까지 1백여건이 넘는 국제회의 행사를 주관하면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윤 팀장은 국제회의 산업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한다. 매년 전 세계에서 개최되는 국제회의는 1만여건에 달한다. 참가자 1인당 체류비용으로 쓰는 돈은 1주일을 기준으로 했을 때 3천달러 정도. 4천명만 모여도 한 회의당 1백억원이 넘는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국제회의는 최근 한 국가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여줄 게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전문인력도 텃없이 부족하고요" 보다 많은 국제회의를 유치하기 위해선 정보와 아이디어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는 많은 젊은이들이 이 분야에 관심을 가져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