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계간 문예지『창작과비평』 및 출판사 창작과 비평사의 최근 행보와 노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평론가들의 글이 발표돼 지식인 집단과 문단내 새로운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이같은 문제 제기는 지난해부터 일기 시작한 이른바 문학권력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그간 문단내 비공식 석상에서 부분적으로 회자돼 온 창비 비판이 수면 위로 본격 부상한 첫번째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논객들은 이미 문단내에서 공격적인 글쓰기로 소문나 있는 소장 평론가 권성우(38.동덕여대 교수)씨와 이명원(31)씨. 이들은 이번주 출간된 계간『사회비평』가을호에 게재한 글에서 창비가 이른바'진보 권위주의'와 '기회주의'에 매몰돼 있다며 자체 혁신을 촉구하고 있다. 권씨는 '열린 진보와 권위주의 사이' 제하의 글에서 최근 창비의 지면에서는 문학권력과 안티조선을 포함한 언론개혁 논쟁 등 주요 논쟁들이 다뤄지지 않고 있는데,이런 핵심 논쟁들에 성실하게 대응하지 않는 잡지를 과연 정론지라고 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권씨는 또 창비 편집위원인 임규찬, 김영희씨의 서평 등 몇몇 실례를 들면서 백낙청 이후 창비 2세대 평론가들의 비평에 치밀한 분석과 성실한 대화, 자기성찰이 결여돼 있다며 그들의 지적 태만과 '진보 권위주의'를 신랄히 비판했다. 주요 문예지간 상호 논쟁과 대화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권씨는 지난시절 순수-참여 논쟁을 치열하게 벌였던 창비와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상기시키면서 최근에는 주요 에콜들이 의도적으로 방조와 밀월, 공조를 유지하는 혐의가 짙다고 지적했다. 이명원씨의 글 '당신들의 기회주의는 위험하다'는 '진보 상업주의'와 '기회주의'란 표현을 내세워 창비를 공격하고 있다. 이씨는 최근 창비는 자신들의 문학적 기준과 전혀 다른 종류의 작품들을 잇따라 출간하는 등 지나치게 실리에 집착하는 출판집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면서 진보와 개혁의 이미지를 다만 장삿속으로만 활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든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현실적으로 투쟁해야 될 부분에 대해서는 완고한 침묵을 지키면서도 원론적이며 추상적인 차원에서만 진보와 개혁의 메시지를 발산하는 형태의 담론은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얻으려는 기회주의의 발로에 불과할 뿐이라며 창비의 거듭남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창비측은 『사회비평』에 실린 글들을 면밀히 살펴본 뒤 내부 회의를 거쳐 언론 기고문 등의 형태로 입장을 개진한다는 방침이다. 창설 이래 최초로 본격적인 '정체성' 비판의 대상이 된 창비가 30대 평론가들의 도전적 문제 제기에 어떤식의 대응을 할 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이성섭 기자 lee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