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개원 30년 만에 국내 대학으로는 처음으로 '여성 원자력 박사 1호'를 배출했다. 주인공은 17일 대전 대덕단지내 KAIST 강당에서 1백73명의 새내기 박사들과 졸업식을 가진 이영일(30) 박사.이날 그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지난 4년 동안 아빠 역할에다 엄마 노릇까지 해준 남편과 탈없이 자라준 딸 바현이에게 졸업장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KAIST 출신의 1호 여성 원자력 박사라는 영광보다는 연구하고 논문쓰느라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해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더 크다고 털어놓았다. 논문을 준비하는 동안 자정을 넘기는 일이 다반사였고 막바지 작업 때는 새벽 3∼4시에 집에 들어가기가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아이 목욕에서부터 재우는 일까지 도맡았다. 앞서 졸업해 원자력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남편이 이 때처럼 고마웠던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박사학위 취득은 남들보다 몇 곱절이나 힘들었다. 주위 동료들처럼 공부만 하는 연구원이 아니라 아내와 엄마의 역할까지 함께 해내야 했기 때문이다. 친정과 시댁이 모두 서울에 있어 아이를 돌봐줄 곳이 마땅치 않아 결국 한 달에 45만원을 지불하고 보모를 뒀다. 그는 "공부하면서 힘들었던 것은 밤샘 연구가 아니라 육아였다"며 "그나마 누구보다 열심히 가정일을 도와줬던 남편이 없었다면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힘들었던 만큼 고등학교 때부터 꿈꿔왔던 원자력박사 학위를 받는 졸업식장에서의 감회는 남달랐다. 그는 "남들과 다른 분야에서 일해보고 싶다"며 경희대 원자력공학과를 지원했다. 주변에서 "여자가 무슨 공대에다 그것도 원자력이냐"며 만류했다. 그러나 진지한 그의 모습에 우려는 곧 격려로 바뀌었다. 졸업 때는 공대 전체 수석의 영광을 안았다. "남자들이 대부분인 공대라서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많았어요. 친구들과 어울려 문화를 공유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지요" 이 박사는 졸업 후 한국전력 산하 전력연구소에서 근무하게 된다. 이곳에서 그동안 연구해온 환경친화적 원자력발전과 에너지전략 등에 대한 연구를 계속할 계획이다. "서구에서는 한 때 퇴조위기에 몰렸던 원자력발전이 석탄이나 석유자원보다 공해가 덜하고 안정성이 높은 환경친화적 에너지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다시 르네상스를 맞고 있습니다" 그는 기회가 닿는다면 과기부나 산자부 등에서 환경친화적 원자력정책을 수립하는 데 참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대덕=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