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일산에 사는 정모씨(35). 지난 99년 첫 직장이었던 은행을 그만두고 개인사업에 뛰어들었지만 밑천만 날렸다. 아내와 상의한 끝에 올 초부터 일자리를 찾아 나섰지만 아직도 실직자 신세다. 퇴직 금융인이 워낙 많은 탓에 웬만한 금융기관의 취업경쟁률은 몇천대 1까지 치솟고 있는 형편이다. 그는 몇달 전부터 일자리 구하기를 그만두고 컴퓨터 공부를 하고 있다. 정씨와 같은 구직단념자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구직단념자는 정부 통계상 실직자가 아니라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고 있어 실업자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다. 취업자들의 고용여건도 크게 나빠지고 있다. 1주일 근로시간이 36시간에 못미치는 근로자 수가 한달새 30% 가까이 늘어났고 임시·일용직 근로자 비중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1년 이상 실직상태인 사람만도 11만3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실업자수·실업률 등 양적인 지표들에 기대어 고용사정이 좋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고용의 질적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양적인 지표는 '번드레'=통계청이 16일 발표한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실업자 수는 76만명으로 전달보다 1만5천명 늘어났고 실업률은 3.4%로 0.1%포인트 높아졌다. 실업자 수가 소폭 늘어났지만 지난 2월의 1백6만9천명과 견주면 비교도 안될 만큼 사정은 좋다. 당시 실업률은 5.0%에 달했다. ◇고용의 질은 악화=직장을 떠난 지 1년이 넘도록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장기 실업자 수는 11만3천명으로 전달보다 3천명(2.7%) 증가했다. 정씨처럼 구직활동을 아예 포기해버린 구직단념자는 13만명으로 전달에 비해 10.2% 늘어났다. 구직단념자 수는 지난 6월에도 전달에 비해 6.3% 증가했었다. 두달새 1만9천명이 구직포기 대열에 들어선 것이다. 취업자로 분류된 사람들 가운데 1주일 근로시간이 36시간 미만인 근로자수는 2백38만6천명으로 전달의 1백85만9천명에 비해 59만4천명이 늘어났다. 근로시간이 18시간 미만인 취업자 수도 61만1천명으로 15만명 증가했다. ◇소비업종 고용사정만 좋다=산업별 취업동향을 보면 제조업 건설업 등 생산직 업종에서의 취업자 수는 감소한 반면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전기·운수·창고·금융업 등 서비스 관련 업종에서는 증가했다. 제조업 취업자 수는 4백17만2천명으로 전달보다 1만6천명(0.4%) 줄어들었고 사업·개인·공공서비스업은 5백50만7천명으로 2만6천명(0.5%) 감소했다.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은 5백89만4천명으로 9만7천명(1.7%) 늘어났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