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끼 식사와 오후엔 식사를 하지 않는 오후불식(午後不食),묵언,그리고 잠잘때조차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 전남 곡성군 옥과면 성륜사 조실 청화(78) 스님의 한결같은 생활이다. 청화 스님은 지난 47년 금타 스님을 은사로 백양사 운문암에서 출가한 이래 이런 고행(苦行)을 방편삼아 수행정진해왔다. 청화 스님을 지난 6일 오후 성륜사 조선당(祖禪堂)에서 만났다. 온화한 표정 속에 담긴 눈빛이 맑고 형형하다. 청량법문을 청하자 청화 스님은 "뭐 들을 게 있다고 이 먼 곳까지 오셨느냐"며 말문을 열었다. -스님께선 평생을 고행정진해 오신 걸로 압니다. 고통도 마다하지 않고 수행하시는 뜻은 어디 있습니까. "부처님이나 중생들에게 빚진 게 많기 때문이지요. 수행을 해야 참사람이 됩니다. 수행이란 인간성의 본래 자리를 깨닫는 것이니까요. 모르는 사람들은 수행을 고통이라고 생각하지만 직접 해보면 몸도 마음도 가볍고 환희심이 충만해집니다. 수행을 하면 잠재적 가능성으로 있던 자비와 지혜,행복이 개발돼요. 덕분에 저는 80이 다 됐는데도 평소에 감기 한번 안걸리고 아픈 적이 없어요" -인간성의 본래 자리란 어떤 것입니까. "우리 중생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실상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꿈같고 허깨비같은 허상일 뿐입니다. 진짜 실상은 인간성의 본바탕인 동시에 우주의 생명에너지이며 부처의 자리지요. 일체의 존재는 인연에 따라 잠시 모였다 흩어질 뿐 근본은 하나인 것입니다. 본래 사람마다 부처의 성품을 갖고 있으나 번뇌에 가려서 보지 못할 뿐이지요" -진짜 실상이 인간성의 본바탕이며 우주의 생명에너지라고 하셨는데 생명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생명은 무량무변의 가능성을 가진 것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5척 남짓한 이 몸뚱이에 들어 있는 의식만 생명이라고 좁혀서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온 우주의 삼라만상이 다 한 생명이지요. 겉만 보니 각각 달라 보이지만 본체를 보면 동일한 실재요,내 생명과 네 생명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생명을 죽이고 육식을 한다면 그만큼 인간성이 훼손되고 업이 쌓여 다음 생에 보복을 받게 됩니다" -스님께서 평소에 무아와 무소유의 삶을 강조하시는 것과 무관하지 않겠군요. "그렇습니다. 인간의 몸이란 자연과학적으로 따지자면 여러가지 물질이 잠시 인연에 따라 모인 것일 뿐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고 맙니다. 몸을 이루는 세포도 오늘과 내일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이 몸이 내 것이라고 착각해 끝없이 욕심을 내지요. 절제하고 욕망을 줄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행복도 평화도 없습니다. 지금처럼 인류가 방만하게 살다가는 종국엔 본인도 사회도 파멸에 이를 것입니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종교적 신념이 약해져 더 방만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20세기 전반까지의 기계적 과학정신은 종교를 적대시했지만 그후 현대물리학의 발견은 우주의 신비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어요. 본디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어서 세상의 모든 물질을 잘게 쪼개 나가면 소립자 단계를 거쳐 종국에는 텅 비어버리는 공(空)의 세계가 됩니다. 그러나 이 공은 그냥 비어있는 게 아니라 에너지로 가득차 있지요. 이것이 바로 불성(佛性),즉 생명에너지입니다" -스님께서는 참선의 여러 방편들 가운데 염불선을 강조하신 걸로 압니다만. "참선이란 마음의 초점을 불성에 두고 본래의 자기를 깨닫는 것입니다. 화두선이니 묵조선이니 하는 것은 방편일 뿐,수행역량에 따라 선택하면 됩니다. 기도나 염불을 이른바 '방편공부''타협공부'라고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간화선만이 제일이라는 '바짝 마른' 논리로는 빨리 피로해지고 싫증나게 됩니다" -일반인들이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일상생활에서 마음 닦는 수행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그때 결단을 해서 가령 한 사흘 정도라도 명상을 해본다든가 하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닦을 수 있겠습니까" 수행담을 들려달라는 요청에 청화 스님은 "생사를 초월해야 공부가 끝나는데 아직 내세울 게 없다"며 사양했다. TV 라디오 신문 잡지 등을 안본 지 10년도 넘어 세상 소식과는 담쌓고 지낸다는 청화 스님은 "개인적인 에고(ego)를 떠나 우주 중생의 행복을 위한 마음이 하나로 모이면 불심을 닦는 게 곧 사회참여"라고 말했다. 청화 스님은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메이지대에 1년 가량 다니다 징병으로 국내에 끌려와 해방을 맞았다. 그 후 좌우 대립에 심한 갈등을 겪은 끝에 24세때 출가했다. 청년시절부터 동서양 철학서적을 두루 섭렵했으며 물리학 등 자연과학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벽송사,해운사 백장암등 전국 사찰을 돌며 수행했고 곡성 태안사를 거쳐 현재 성륜사에 머물고 있다. 곡성=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