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기관의 늑장 대처가 침수 피해를 키웠다는지적이 일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의 뒷북 행정이 도마위에 올랐다. 서울시는 16일 수해대책을 마구 쏟아냈다. 28명이 숨지거나 실종되고 주택 2만6천여가구가 침수되는 등 막대한 피해규모를 의식한 듯 다양한 대책을 발표했다. 우선 시는 무려 10명이나 되는 애꿎은 시민이 가로등 등 전기 시설물에서 흘러나온 전기에 감전돼 숨진 것과 관련, 가로등 안전관리 대책위를 구성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또 침수지역 피해주민들이 빗물펌프장이 제때 가동되지 않았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해당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합동조사반을 구성, 펌프장 10곳의 적정 가동 여부에 대한 점검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수해를 당한 중소기업에는 총 130억원을 특별 융자지원하고 수재민들에게 응급생계비를 지급하겠다는 등의 생색내기용 대책도 잇따라 발표됐다. 이 때문에 대책 자료를 작성해야 하는 각 부서 직원들은 폭우가 서울지역을 강타할 때보다도 더 바삐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한 직원은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자치구들도 책임을 인정하기는 커녕 변명에 열을 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빗물펌프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는 주민들의 민원이 계속되고 있는 동대문구와 양천구 등은 이날 차례로 해명자료를 냈다. 해명자료의 골자는 "빗물펌프장은 정상 가동됐지만 비가 너무 많이 왔기 때문에 침수피해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장석효(張錫孝) 서울시 건설국장도 "이번 폭우는 200년만에 최고 수준이었다"며 행정력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천재지변이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침수피해 지역 주민들은 이같은 변명을 곧이 듣지 않을 것이다. 자다가 빗물에 익사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발생하는 와중에도 대피안내 방송을 하지 않는 등 행정기관의 안일한 대응이 사실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흥동의 한 주민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주민들이 펌프장측에 항의전화를한 뒤 10여분만에 골목길에 들어찬 물이 빠지기 시작했는 데 어떻게 펌프장이 제때 가동됐다는 말을 믿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어쨌든 서울시나 각 자치구가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생색내기용이 아닌 진정한 수해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끓어오르기 시작한 시민들의 분노는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박세진 기자 parks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