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 40~50대 한국인의 사망률이 선진국에 비해 2배 이상 높다는 인구동태 역학조사 결과가 나와 있다. 이런 높은 사망률의 근저에는 성인병이란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 지난 99년 한햇동안 사망한 사람들의 통계를 보면 뇌혈관질환(뇌출혈 뇌경색 등)에 의한 사망률이 가장 높고 심장질환(심근경색 협심증 등)이 그 뒤를 잇는다. 다음으로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 위암, 간질환(간염바이러스와 알코올에 의한 간염 및 간경변 등)에 의한 사망자가 많다. 통계만 봐도 성인병의 적절한 예방과 치료가 건강하고 오래 사는 첩경임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뇌혈관질환과 심장질환의 뿌리가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임을 감안할 때 이들 세가지 질환을 조기에 퇴치하는 것이야말로 만병의 근원을 없애는 것과 같다. 기름진 고(高)지방식을 하는 서양인들에 비한다면 한국인들은 아직까지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뇌졸중 등에 의해 사망하는 비율이 통계상 아직까지는 별로 높지 않다. 미국 독일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 비한다면 성인병 발병률이 훨씬 낮다. 그러나 네덜란드 스웨덴 폴란드 캐나다보다는 높거나 비슷한 수준이고 앞으로 생활패턴이 갈수록 서구화될 전망이어서 성인병 발생 추이를 심각하게 예의주시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서구화 추세가 심한 20대 미만의 연령층과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30대 이후 직장인들의 성인병 발병 위험이 높다는데 경계심을 보여야 한다. 성인병은 일본에서 나온 용어로 성인이 돼서 발병하는 복합적인 질병을 말한다. 병의 원인이 다양하고 나이가 들면 저절로 생기고 뚜렷한 예방책이나 완벽한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의학적으로 말한다면 "만성 퇴행성 특수질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또 성인병을 "생활습관 병"이라고 한다. 과음 과식 흡연 운동부족 스트레스 등 잘못된 생활습관이 누적된 결과로 병이 나타난다는 차원에서 이름지어진 것으로 탁월한 작명이 아닐 수 없다. 성인병의 3대 원흉인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은 초침 분침 시침이 어울려 돌아가는 바늘시계의 톱니바퀴와 같다. 고혈압과 고지혈증이 오래 지속되면 필연적으로 동맥경화가 나타나고 이에 따라 당뇨병 심장병 뇌졸중 등이 생긴다. 특히 당뇨병이 생기면 고혈압과 동맥경화가 악화되는 경향에 가속도가 붙는다. 결국 이들 질병을 잘 관리해야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다. 고혈압 =보통 30대에 경증 또는 불안정한 형태의 고혈압이 발병하는데 대부분 자신이 고혈압인 줄 모르고 지내거나 또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반신반의하는 상태에서 무사히 지내게 된다. 40대에 이르러서는 비교적 고정된 고혈압으로 진행하며 증상의 경중에 따라 불완전 또는 완전에 가까운 치료를 받게 된다. 고혈압은 혈관벽에 물리적 압박이 지속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혈관벽이 두터워지고 유연성이 떨어지며 혈관벽에 낀 노폐물을 청소할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고지혈증 =고혈압으로 인해 퇴행적으로 변한 혈관에 콜레스테롤 중성지방의 혈중 농도가 높아지면 끈적끈적한 물질이 혈관에 엉겨붙고 산화되면서 동맥경화가 된다. 점차 혈관의 질이 떨어지면서 심장으로부터 전신에 피를 뿌려주는 동맥, 심장에서 뇌로 올라가는 경동맥, 심장에서 두 다리로 흐르는 하지동맥이 녹슨 하수도관처럼 노폐물로 가득해진다. 이런 혈관은 딱딱할 뿐만 아니라 구멍이 송송 드러나게 된다. 이로써 심장병 뇌졸중 당뇨병 등의 합병증이 생긴다. 나아가 미세혈관에도 영향을 미쳐 망막출혈 녹내장 신부전 등을 초래하게 된다. 당뇨병 =고혈당 자체가 피로감과 전신 쇠약감을 유발하며 혈관에 케톤성 노폐물이 늘어나 신장과 간에 독성을 끼치게 된다. 고혈당으로 혈액이나 소변의 삼투압이 높아지면 소변량이 늘어나고 미세혈관 합병증이 생긴다. 이 때문에 눈에 백내장 녹내장이 유발되고 종기나 피부감염이 잘 일어난다. 근력은 약해지고 근육의 분해가 일어난다. 혈관은 탄력이 없고 노후된 수도관처럼 영양물질과 노폐물이 뒤섞여 미세한 출혈이 잦고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않게 된다. 말초혈관이 노폐물로 자주 막히게 되는데 음경혈관이 막히면 황혼의 나이가 서러운 발기부전이 되고 다리로 가는 혈관이 막히면 조그만 상처에도 발에 궤양이 생기게 된다. 이같은 3대 원인질환을 막는 것이야말로 성인병으로 망가지는 노화의 시계바늘에 무거운 추를 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약물요법 식사요법 운동요법이 병행돼야 한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