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인(40) 효성데이타시스템 대표이사는 공학도에서 경영컨설턴트로, 다시 기업의 경영자로 변신한 특이하고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8년이라는 길지 않은 기간에 두 번의 터닝 포인트를 성공적으로 장식했다. 최 대표는 서울대 공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석사를 거쳐 지난 92년 미국에서 공학(MIT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마칠 때까지 인생목표를 진리탐구와 신기술 발명에 두고 대학교수나 연구소 연구원이 되려고 했었다.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라야 대학입시로 공부했던 정치경제라는 과목 정도에 한정돼 있던 그가 컨설턴트가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학위를 마칠 무렵 맥킨지 컨설팅사는 한국사무소 인력을 보강하기 위해 전공에 관계없이 미국내 유수 학교의 한국인 졸업생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처음에는 경영이나 맥킨지에 대해 무관심했던 그는 연습차원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여러 차례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경영컨설팅에 대해 이해하면서 그는 인생의 방향을 1백80도 전환하기로 결심했다. 최 대표는 "당시 두 가지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 뒤 스스로 대답을 했다"고 말했다. 하나는 '과학자보다 경영컨설턴트로서 내 인생에서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가'였고 두번째는 '이제까지 비즈니스에 문외한이었던 내가 과연 이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겠는가'였다. 물론 두 질문에 모두 '예'라는 긍정적인 판단이 섰기 때문에 과단성있는 결정을 내렸다고 회고했다. 최 대표는 "7년간 컨설턴트 생활을 하면서 처음의 판단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과거 자신의 판단이 올바른 판단임을 입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표현이 맞는지도 모른다. 경영컨설턴트였던 그는 1년 전 효성데이타시스템 대표이사로 변신하는 또하나의 터닝포인트를 가졌다. 효성과의 인연은 처음에는 컨설턴트와 고객의 관계로 출발했다. 그는 지난 96∼98년 1년반 동안 장기적으로 효성의 경영자문을 수행했다. 이 기간은 IMF 경제위기라는 특수 상황이어서 그 관계는 통상적인 고객과 컨설턴트 관계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어려운 시기를 함께 헤쳐 온 효성의 경영층과는 공유하는 감정의 끈이 다른 고객사에 비해 두껍게 느껴졌다"고 당시의 심정을 설명했다. 구조조정이라는 테마로 자문하던 그가 이제는 효성그룹에서 정보통신이라는 미래의 성장엔진을 창조해야 하는 경영자로서의 숙제를 안고 있다. 최 대표는 "지나간 시간보다 앞으로 가야할 시간이 훨씬 많은 사람으로서 과거를 얘기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두 번의 터닝포인트는 그의 인생에 지루함보다는 새로운 도전과 변화의 즐거움을 줬다고 그는 평가했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