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던 영월댐은 멸종위기 동식물들을 보호하고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해 건설계획을 백지화 하겠습니다" "동강 주변지역은 자연친화적인 문화관광지구로 정비하여 주민들의 고용과 복지증진에 보탬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1년전인 지난해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 기념식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영월다목적댐 건설계획의 백지화를 공식 발표함으로써 10여년간 계속된 찬.반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다. 정부는 물론 국민 대다수가 홍수예방과 물부족 해결이라는 '현실'보다는 천혜의 비경과 생태계를 보호하자는 '대의'를 선택한 것이다. 이같이 범국민적 동강보존운동으로 영월댐 건설계획이 백지화된지 1년. 하지만 우리 모두가 후손들에게 물려줘야할 자산이라고 외쳤던 동강은 무관심과 무책임 속에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동강의 비경에 대한 환경단체와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은 영월댐 건설계획 백지화 결정을 이끌어 내는데 결정적 계기가 됐지만 이때문에 동강은 국내 대표적인 유원지로 전락, 몸살을 앓고 있다.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는 4월부터 몰려오기 시작하는 동강 행락인파는 여름 피서철에는 하루에 1만명이 넘고 있으며 행락객의 발길은 10월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동강 여기저기에 쏟아내는 쓰레기와 오물로 동강은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고 있으며 강물을 가득 덮은 래프팅 보트의 소란은 수달 등 동강이 보금자리인 동물들을 쫓아 내고 있다. 환경부는 이같은 현실을 인식, 동강일대를 '자연휴식지'로 지정해 이르면 내달부터 래프팅과 야영.취사활동을 못하게 할 방침이지만 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동강은 이미 국민들에게 대표적인 행락지로 자리를 잡은데다 상당수 동강주변주민들은 물론 지방자치단체들에게 동강 행락인파는 경제적 문제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정부가 동강 보존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데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이 동강은 회복 불능 상태로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동굴학회 등이 동강 일대 69개 천연동굴 가운데 20개 동굴을 탐사한 결과 영월댐 백지화의 한 요인이 됐던 동강 유역 천연동굴이 전문 도굴꾼과 일반인에 의해 심하게 훼손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종유석과 석화 등 다양한 생성물이 발달한 정선군 신동읍 하미굴 등 학술적으로 보존가치가 높은 천연동굴이 도굴꾼과 일반인의 침입에 무방비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영월댐 건설계획 백지화에 한목소리를 냈던 지방자치단체도 이제는 동강파괴에 앞장서고 있다. 정선군은 주민숙원사업이라는 명분으로 동강변을 따라 26㎞ 구간의 군도 6호선 확포장 공사를 벌이면서 비탈을 깎아내고 강가의 자갈톱을 골재용으로 채취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 10여년간의 찬.반 논란의 가장 큰 정신적.물질적 고통을 받아온 수몰 해제지 주민들의 시련도 계속되고 있다. 댐건설 백지화 이후에도 수몰해제지 주민들은 정부와 자치단체를 찾아 다니며 피해보상을 요구했지만 얻은 것은 517가구 농가부채 132억원에 대한 상환기간 연기와 이자 일부 탕감 등이 전부였다. 여기에 댐건설 백지화 과정에서 자신들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했던 환경단체와 언론이 마을진입도로공사 등 생존을 위한 지원사업이 시작되자 또다시 제동을 걸면서 수몰해제지 주민들만 사지로 몰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결국 동강을 보존하기 위해 농업.생활용수를 포기하고 홍수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영월댐 건설계획이 백지화됐지만 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 등 우리 모두의 무책임속에 자연환경, 동.식물, 수몰해제지 주민 등 동강의 삶은 시들어 가고 있다. 동강보존본부 엄삼용(嚴三容)사무국장은 "댐건설 백지화는 동강 보존을 위한 국민운동의 시작일 뿐이었는데 우리 모두는 이를 완성으로 착각했다"며 "이제부터라도 말그대로 천혜의 자연자원 동강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월=연합뉴스) 배연호기자 b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