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를테면 깊은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과 같았다. 휘돌아 흐르다가 어느 한적한 곳에 이르러서는 조용히 맴돌며 꽃잎을 어루만지고, 그러다 또 바위나 나뭇등걸을 만나면 굽이쳐 흐르는..."

김태연(55) 미국 스타게이저 그룹 회장.

그가 저서에서 자신을 표현한 글이다.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회사의 CEO(최고경영자), 세계 최초의 태권도 여성그랜드마스터가 되기까지 겪은 고난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늘 "CAN DO(할 수 있다)" 정신으로 무장한 그였다.

한국경제신문이 주최한 강연회에 참석키 위해 한국을 방문을 김 회장을 지난 19일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인터뷰에서 "기업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신용"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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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게이저 꽃을 특히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집 이름도 ''스타게이저 에스테이트''이고 회사도 스타게이저 그룹인데요.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습니까.

"스타게이저(백합의 일종)는 들국화와 함께 나의 꽃입니다.

스타게이저는 별을 바라보는 꽃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별은 한밤에 보입니다.

힘든 환경에서도 별처럼 반짝이고 싶다는 염원 때문에 이 꽃을 좋아합니다"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에는 남녀차별, 미국에서 생활하실 때는 인종차별 등 유난히 차별을 많이 당한 인생인 것 같은데요.

외면적으로는 전혀 그런게 보이질 않는군요.

너무나 밝은 표정입니다.

"호화롭게 컸든 어렵게 자라왔든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본인 자신에 달려 있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행복을 줄 순 없습니다.

나는 지난 날의 역경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것들이 거름이 되고 바탕이 됐습니다"

-한국에서 최근 출판된 책 제목이 ''사람들은 나를 성공이라는 말로 표현한다''로 돼있는데 남들이 평가하는 ''성공''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만.

"성공을 꼭 집어서 말할순 없습니다.

어떤 사람을 돈을 기준으로 하지만 나는 화장실 청소할 때(미국이민 초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 꿈이 있었습니다.

뭔가를 이룩하겠다는 마음이 심어졌거든요.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도 나의 성공은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더 성취하고 싶은게 있다는 뜻인가요.

"나는 이제 유치원생밖에 되지 않습니다.

뜻을 함께 하는 이들과 도시를 만들고 싶고, 디지털화된, 그리고 정신적인 것에 기반을 둔 국가도 만들고 싶습니다.

인터넷을 잘 활용하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많은 사람에게 할 수 있다(can do)는 힘과 마음가짐을 주고 싶습니다.

이제 한국기업인 모두 캔두(can do) 정신으로 무장해야 할 때 입니다"

-국가와 도시를 건설하는 작업은 어느 정도로 진척돼 있나요.

"초기단계지만 동참의사가 많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기왕의 경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불우한 처지의 여성을 돕기 위해 많은 활동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미국 여성계에서 노벨상으로 알려져 있는 ''수잔 앤소니 상''도 수상했구요.

한국 내의 여성지위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한국 여성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참을성 인내력은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이 빛을 보지 못한 것은 억압된 사회구조 탓입니다.

한국의 여성 처지는 나비가 되려고 애벌레를 벗어나려는 상태와 같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일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업 얘기가 나왔으니 진정한 사업가 정신이란 어떤 것인지를 묻고 싶습니다.

"사업가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건 신용입니다.

중국의 경우 신용이 없으면 돈을 줘도 그 돈이 위폐인지를 의심합니다.

신용은 결코 바닥나지 않습니다.

신용은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에 결국은 상대방과 내가 한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6개 계열회사를 거느리고 있는데 관리하기가 쉽지 않겠습니다.

최근 시작한 피부미용 사업의 경우 기존의 반도체관련 사업과 비교해 이질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한데요.

"저는 A라는 회사가 B회사를 도와주는 경우를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돈을 그런 식으로 융통해주면 창의력이 메마릅니다.

혼자서 뭔가 파낼 기회를 줘야 합니다.

고생할 때엔 고생하라고 내버려 둡니다"

-한국의 대부분 벤처기업들은 요즘 빙하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김 회장께선 라이트하우스를 창업한지 20년도 안돼 미국내 1백대 우량기업으로 키웠는데요.

''성공''한 기업가의 입장에서 위기극복과 관련한 조언을 해 주신다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군요.

어떤 마음에서 뭘 성취하려고 시작했는지를 말입니다.

만약 돈을 빨리 벌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많은 고통이 있을 겁니다.

비즈니스는 농사와 같습니다.

갈고 씨 뿌리고 잡초도 뽑아야 하고,사실 지금이 잡초를 제거해야할 시기로 보입니다"

(김 회장은 여기서 지난 82년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할 때의 일들을 소개했다. 사업에 전력투구한다는 심정으로 살고 있는 집을 팔아 마련한 6만달러를 투자했는데 6개월만에 모두 날려버렸다는 것이다.
이만저만한 실패가 아니었다.)

"실망이 컸었죠. 그러나 실망보다 꿈이 더 크다는 것을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실망이 나를 빼앗아갈 순 없었으니까요"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같은 동포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이랄까, 자존심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을 때 주로 먹었던게 수제비입니다.

사람들은 어려웠을 때 먹었던 음식을 성공해선 먹지 않습니다만 나는 지금도 수제비를 좋아합니다.

한국 땅에서 태어나 메뚜기 잡고,맑은 공기 마시면서 컸기 때문에 한국과 한국인을 잊을 수 없죠.

이번 방문도 사실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방위시스템 관련 사업을 진행중인데 현재 아주 중요한 상태라서 내가 자리를 비우면 안되었지만 그래도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으로 왔습니다"

-사업가이자 무술인이어서 생활방식도 남다를 것 같은데, 하루일과를 소개해 주시죠.

"5시에 일어난 후 가족들과 함께 집 밖에 나가 해맞이를 하고 명상을 합니다.

아침식사는 6시45분쯤에 하고요.

8시께 회사에 출근해선 각종 미팅에다 보고를 받느라 정신없습니다.

저녁에 퇴근해선 집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일합니다.

취침 시간은 새벽 2시쯤 됩니다.

수면시간은 2∼3시간 가량입니다.

워낙 습관으로 굳어진 것이어서 그 정도면 충분히 피로를 풉니다"

김 회장은 인터뷰가 끝난 후 국내에 팬클럽(회장 민귀영.37)과 TYKcando.com이 만들어졌다며 팬클럽 명부를 보여주며 소녀같은 웃음을 지었다.

그는 27일까지 한국에 머물며 강연을 하고 한국내 사업문제를 협의할 예정이다.

이성태 기자 stee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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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연 회장은 21일 오후 1시30분부터 삼성동 아셈회의장 3층 오디토리움에서 인생스토리와 기업경영 방법 등에 관해 강연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