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실시 이후 의료계의 상업화 경향이 점차 심화되는 반면 공적 책임을 수행하고자 하는 의식은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의대 교수들은 상아탑을 뒤로 한채 대거 개업의 길로 나서고 있으며 대학병원은 "경영난 타개"를 내세워 교수들을 연봉제로 내몰고 있다.

중소병원은 종합병원과 의원의 틈바구니에서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과잉진료"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동네의원들은 수익성이 개선됐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대학병원의 "공동화(공동화)"와 이에 따른 의료전달체계의 파행을 우려하면서 이는 결국 환자들의 비용 부담증대로 귀결될지 모른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의약분업 이후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 의료계의 돈벌이 추구 경향과 경영여건의 변화,이에 대한 원인과 파장 등에 대해 알아본다.

---------------------------------------------------------------

대학병원이 "비어가고"있다.

작년 하반기에만 연세대 가톨릭대 인제대 의대에서 20여명의 교수가 개업의로 나섰고 올들어 현재까지 추가로 50여명이 개업을 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작년 7월초부터 오는 6월말까지 개업이나 직종 전환,또는 대우가 좋은 개인 병의원의 샐러리맨 의사로 전직한 교수는 모두 1백명이 넘을 것으로 의료계는 보고 있다.

대학병원은 의료제도 변화로 인해 수입원이 줄고 환자수마저 감소하자 의대 교수들에게 연봉제를 실시할 것을 추진중이다.

경희대 고려대를 필두로 이대 가톨릭대 등 상당수의 대학병원들이 의대 교수들의 진료실적과 수익성을 분석,차등화된 연봉제를 진행하고 있다.

<>캠퍼스를 떠나는 의대 교수들=의대교수들의 학교 이탈이 심화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부터.연세대의 경우 임승정 이영기(안과) 신극선(성형외과) 한승경 이정복(피부과)교수 등이 최근 1년새 개업해나갔다.

가톨릭대의 경우 한태원 사우진 김민호 정상문 임용우 등 5명의 전 안과 교수가 집단사표를 내고 작년 여름 강남에 강남압구정성모안과를 공동 개원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작년 연말 여운철 박기범 등 2명의 피부과 교수가 거의 동시에,경희대병원은 작년 하반기에 홍남표 이두형 교수가 잇달아 나가 진료에 차질이 빚어졌다.

삼성서울병원은 현재 두명의 성형외과 교수가 개원할 채비를 하고 있다.

이밖에 인제대 한림대 고려대 한양대 순천향대 등에서도 두세명 이상의 교수들이 병원을 떠났다.

주된 이유는 수입 차이 때문이다.

사직서를 쓰는 교수가 대부분 안과 피부과 성형외과 등 비보험 진료가 많은 과목 소속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교수 연봉은 연차별로 차이가 있지만 7천만원~1억원 사이.세금으로 약 30%를 내고 나면 품위유지도 할 수 없다는게 교수들의 하소연이다.

하지만 개업을 하면 적어도 2~3배의 소득을 집에 갖고갈 수 있다.

신극선 이정복 교수 등은 정년이 몇년 남지 않았는데도 미련없이 교수직을 벗어버리고 개업했다.

또 이용배 전 성균관대 의대교수는 교수를 마다하고 처우가 좋은 개인의원으로 옮겨 월급의사의 길을 택했다.

<>대세는 의사연봉제=이런 상황에서 대학에 남은 교수들은 요즘 논의되고 있는 의사연봉제 시안에 대해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교수들은 진료과별로 수익차이가 심한데 연봉제를 실시하면 의사들간 위화감이 생길게 뻔하고 대학병원 본연의 임무인 연구와 교육은 뒷전으로 한채 진료에만 목을 매는 파행이 우려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A대학 B교수는 "최근 모든 교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슬라이드를 통해 교수 각자가 벌어들인 금액과 수익성을 분석하는 자료를 공개하는 바람에 교수들이 흥분과 개탄을 금치 못했다"며 "교수가 "돈 버는 기계"라면 개원을 하지 뭐하러 대학에 남겠느냐"고 흥분했다.

현재 대부분의 대학병원은 원가분석 시스템을 갖춰놓고 있다.

병원측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교수 개인별 수익성을 평가할 수 있다는 의미다.

내년초부터 국내 대학병원으로서는 처음으로 본격적인 의사연봉제를 실시하는 경희대병원은 최저와 최고의 연봉차가 2천만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학병원의 변화와 평가=그동안 의대 교수는 스스로 느끼는 권위,연구와 교육성과에 대한 보람을 터전으로 삼아 살아왔다.

그러나 의약분업투쟁으로 의료계의 권위가 실추되면서 "아저씨"소리를 듣게 되자 실의에 젖을 수밖에 없었다는게 대다수 교수들의 얘기다.

더욱이 의사들의 의약분업투쟁은 대다수 국민에게 의사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남겼다.

이 때문에 의사들은 생존을 도모하고 망가진 자존심에 대한 대리만족을 위해 상업적인 성향을 띠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이제 더 이상 의료를 "인술의 실천"에서만 보지 말고 엄연한 "경제활동"의 하나로 이해해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한 의사는 "의대 교수가 돈벌이에 나서는 세태를 놓고 삭막해졌다고 말하기 전에 의사도 실력과 경쟁을 통해 적절한 부와 명예를 쟁취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보는게 옳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