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졸업때까지 죽어라 공부해봐야 졸업이 곧 실업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제 아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은행간부로 일하고 있는 이모씨(46.서울 강남구)는 "입시지옥에 허덕이고 있는 아이들을 뒷바라지 하는 일에도 이젠 지쳤다"며 이민을 결심하게된 심경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미련을 버린 그도 "요즘은 대학생들까지 유학이 아닌 이민을 적극 고려하는 사람이 많다"며 나라의 앞날을 걱정했다.

최근들어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미래에 대한 불안과 자식들의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이민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사람들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

지난 3일부터 이틀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해외이주·이민 박람회에는 이러한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뤘다.

행사를 주관한 한국전람의 김경숙씨는 "박람회가 열린 이틀동안 유학과 이민 상담자를 합쳐 4만명이상이 다녀갔다"며 "1백여개 부스에 상담이 끊이지 않고 계속됐다"고 말했다.

이번 박람회에 참가한 유니버셜 해외이주컨설팅사의 유지영 과장은 "자녀의 ''왕따''와 사교육비를 걱정해야 하는 교육현실에 염증을 느낀데다 뚜렷한 노후대책마저 보장받지 못한 부모들이 캐나다나 미국 등지로 이민을 떠나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들어 아이들을 조기 유학보내는 대신 아예 가족 전체가 떠나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이민을 가서 영주권을 따내면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조기유학을 보내 10년이상 학비를 대는 것보다 이민가는게 훨씬 경제적"이라고 덧붙였다.

과거에는 주로 40대 이상의 연령층에서 이민 대열에 섰으나 요즘에는 졸업후 취업난이 걱정돼 대학 재학생들도 이민을 준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해외 영주권을 획득할 경우 한국에서 취업하지 못하더라도 또다른 삶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이민 열풍에 대해 "준비없는 이민은 위험하다"며 경고를 보내고 있다.

한마음이주공사 김미현 사장은 "이민 절차를 밟는데 1년이상의 시간이 필요한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시라도 빨리 한국땅을 떠나려고 서두른다"고 전했다.

그는 "선진국 이민은 자격조건을 갖추기 어려운데다 이민은 분명 환상이 아닌 현실인 만큼 현지교포들의 사례 등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장유택 기자 chang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