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다루는 의료계는 섬세하고 꼼꼼한 여성의 손길이 절실히 요구되는 분야다.

하지만 밤샘과 장시간의 수술에 시달리는 수련과정을 거치다보면 여의사가 살아남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다.

의료계의 보수적인 풍토도 여의사가 설 땅을 좁게 만들었다.

1960년대 이전 우리나라의 여의사 수는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80년대에는 2천여명을 넘어섰고 작년에는 서울대 의대 신입생 가운데 여자가 절반을 차지할 정도가 됐다.

양적인 팽창에 그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산부인과 소아과 정신과 등에 국한돼온 여성의 진료 영역이 90년대 이후 안과 피부과 비뇨기과 등으로 급속히 넓어지고 있다.

윤혜선(64)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소아과 교수는 현역으로 뛰는 여성 의대교수 가운데 맏언니다.

작고한 윤덕선 한림대 설립자의 맏딸인 윤 교수는 폐렴으로 아들 넷을 잃은 부친의 뜻을 받들어 의학을 전공했다.

지난 75년부터 2년간 미국 조지타운 대학에서 신생아학을 공부했다.

소아 알레르기 및 호흡기질환 전문의로 지난 99년부터 대한소아과학회와 대한천식 및 알레르기학회 회장을 맡아 이끌고 있다.

''사천만의 알레르기'' ''감기를 달고 사는 아이들'' ''어린이 알레르기를 이기는 101가지 이야기'' ''소아천식치료 가이드라인'' 등을 저술,알레르기성 호흡기질환의 계몽에 주력하고 있다.

조윤애(54) 고려대병원 안과 교수는 사시 약시 등 소아 안과질환의 개척자로 통한다.

외과의사인 아버지의 권유로 의사의 길을 택했다.

안과 전공의 수련기간에는 남자들과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결혼 후 4년간 아기도 낳지 않고 버텨냈다.

또 지난 82년 미국 워싱턴 의대 국립소아병원에서 연수를 받을 때도 남편과 아이들을 한국에 남겨 두고 혼자 미국에 건너갔다.

그는 귀국 후 국내 사시수술의 수준을 한단계 도약시켜 놓았다.

앞으로 사시 환자의 유전자를 규명해 유전자 치료법을 찾아낼 계획이다.

윤덕미(49)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마취과 교수는 통증의학 분야의 대표주자로 알려져 있다.

지난 73년 세브란스병원 통증클리닉이 개설될 때부터 참여해 지난 86년 대한통증학회가 창설되기까지 온몸으로 뛰면서 연구활동을 해왔다.

대한통증학회 부회장을 맡아 학회 활동을 주도하고 있으며 암의 통증을 정복하는 일에 도전하고 있다.

김윤덕(47)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안과 교수도 안(眼)성형 분야에서 유명한 의사다.

지난 86년 안 성형에 매료돼 미국으로 연수를 떠나 각종 치료기법을 연마한 후 귀국해 서울대병원에 국내 처음으로 ''안성형 클리닉''을 차렸다.

갑상선 항진증에 의한 안구 돌출, 안구 함몰, 안와벽 골절수, 안검하수, 안검경련증 등의 새로운 수술기법을 도입해 불모지나 다름없던 이 분야를 개척했다.

박금자(48) 산부인과 원장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강의와 진료를 병행하다 지난 84년 산부인과를 개원, 굴지의 여성 전문병원으로 성장시켜 놓았다.

지난 89년부터는 성폭력의 사회적 문제성과 심각성을 깨닫고 한국 성폭력 상담소의 의료자문위원으로 일해왔다.

3월중 한국성폭력위기센터를 열기 위해 한창 준비중이다.

현재 ''새정치 여성연대'' 공동대표, 대한폐경기학회 이사, 대한의사협회 편집위원 등을 맡고 있다.

정신의학계에는 신민섭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정유숙 성균관대 소아정신과 교수, 신의진 연세대 정신과 교수 등이 포진해 있다.

대중성 있는 스타 의사로는 이나미씨와 정혜신씨가 있다.

신민섭(43) 교수는 지난 85년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임상심리 전공의를 거친 뒤 93년 미국 일리노이대 발달장애센터에서 연수했다.

94년 서울대병원 정신과 교수로 특채됐다.

97년 서울대 어린이병원에 학습장애클리닉을 개설, 우울증 주의력산만 등의 정서적 심리적 문제로 학습이 부진한 어린이를 치료해 오고 있다.

99년에는 주의력 장애를 쉽게 진단할 수 있는 CD, 2000년에는 주의집중력을 향상시키는 게임형 소프트웨어 ''어텐션 닥터''를 개발해 주목받았다.

신경정신과 의사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이나미(40)씨는 서울신문 신춘문예와 ''문학사상'' 신인상 당선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글재주로 신문 방송에서 활동하고 있다.

''마음과 마음'' 정신과 원장인 정혜신(38)씨는 톡 쏘는 필치와 언변으로 30∼40대의 시달리는 중년남성을 어루만져 주는 스타 의사다.

앞으로 ''한국의 남성 콤플렉스'' ''구조조정의 심리적 공황'' ''심리경영''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할 계획이다.

이대목동병원 윤하나씨는 국내 최초의 여성 비뇨기과 전문의.무관심 속에 방치된 여성 성기능장애 문제와 요실금 방광염 같은 여성 비뇨기질환을 본격적으로 치료해 보겠다는 의욕에 차 있다.

이밖에 지현숙 서울중앙병원 임상병리과 교수가 혈액분석, 박귀원 서울대병원 교수가 소아외과수술, 안규리 서울대병원 교수가 신장병 분야에서 각각 발군의 실력을 보이고 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