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먹은 글자가 하나 있어서

-고(故) 서정주 선생님 영전에

내리는 눈발 속에서

괜찮다…괜찮다…괜찮다…하시더니

수부룩이 내려오는 눈발속에서

울고 웃고 수그리고 새파라니 얼어서

운명들이 모두다 안기어 드는 소리…

속에서

이별이라니요

혼자 눈감으시다니요

나는 마음속으로만은

내 나름대로의 정신의 영생이라는 것도 생각할 줄

알고 사는 사람인지라 하셨으니

숨이 아조 내게서 넘어가는 그때까지

나는 인생의 간절한 것들을 늘 추구하고

또 추구할 것이라 하셨으니

이건 아닙니다

이별 아닙니다

여기는 어쩌면 지극히 꽝꽝하고

못견디게 새파란 바윗 속일 것이니

연한 풀밭에 벳쟁이도 우는 서러운 시굴일 것이니

여기는 팍팍해서 못가겠는 몇만리이며

여기는 어찌면 꿈이라 하셨으니

이건 이별 아닙니다

묘법연화경 속에

까마득 그 뜻을 잊어먹은 글자가 하나

도무지 도무지 생각이 안나는 글자가 하나 있어

낮잠이나 잠깐 드시려고 한 것이지요

이건 이별 아니지요

최정례 <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