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봉 <연세대 의대 정신과 교수>

벤처기업을 세워 큰 돈을 모았던 한 40대 사업가가 정신과를 찾아 온 일이 있다.

운영자금을 감당하지 못해 얼마전에 회사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는 불면증과 우울증을 호소했다.

다른 일을 해야겠는데 도무지 신통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고 밤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이다.

가끔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뜨끔해지고 멍해진다고 말했다.

어느 순간에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거나 무언가를 부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이런 증상을 ''신체화 장애''라고 한다.

심리적 불안이 행동으로 표출되면서 부작용을 일으키는 경우다.

무력감과 절망,자존심 상실 등 심리적 위축이 지나치면 자신도 모르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외환위기 때 중년 남성들에게 집중적으로 발생했던 증상이 다시 두드러지는 것 같다.

대체로 불황이 심각해지면 이런 환자가 늘어나기 때문에 일종의 ''불황증''이라고 할 수도 있다.

흔히 ''화병''이라며 무심코 넘기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증상을 방치하면 불안이 지나쳐 세상 살 맛을 잃게 되고 더 큰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의욕과 자존심을 되찾는 등 스스로 심리적 안정을 취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선은 이런 상황을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도록 해야 한다.

그동안 지나치게 과욕한 것은 아닌지,돈에만 혈안이 됐던 것은 아닌지,자신의 삶의 자세는 올바른지 등을 되돌아 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가치관이 왜곡됐거나 진정한 자신의 가치관과는 다른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쉬거나 돌아서 가는 것이 건강과 삶을 위해 필요할 때가 있다.

너무 빠르고 쉬운 길만 찾았다가 크게 낭패를 보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건전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소비수준과 의식을 한단계 낮추어 보라는 것이다.

그런 뒤 진정한 ''벤처 정신''을 다시 한번 발휘해 보자.심리적인 안정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재도전''이나 ''칠전팔기''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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