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등급제가 도입되는 2002학년도 입시부터 수능시험의 변별력은 지금보다 훨씬 떨어지게 된다.

전체 수험생을 점수에 따라 1등부터 꼴찌까지 한줄로 세워 9등급으로 나누기 때문이다.

수능등급제는 현재처럼 ''극미한'' 점수차로 당락이 결정되는 ''수능지상주의''를 극복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다.

장기적으로는 수능을 ''최저자격기준''으로 만든다는게 교육부의 방침이다.

등급제 도입에 따라 내년부터 수험생의 성적표에 총점은 표시되지 않고 언어 수리 사회탐구 과학탐구 외국어 등 각 영역별 점수와 등급(영역별 등급및 5개영역 종합등급)만 표기된다.

물론 영역별 점수를 합치면 수험생이 얻은 총점을 알 수는 있지만 교육부는 각 대학들이 가급적 총점을 전형기준으로 활용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등급제는 실제 수능시험에서 얻은 점수차가 30점 이상인 학생간에도 똑같은 등급을 받게 할 수 있다.

상위 4%(96점) 이내에만 들면 모두 1등급에 속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0학년도를 기준으로 할 때 원점수(수험생이 원래 얻은 점수) 3백60.7점 이상을 받은 인문계 수험생은 모두 1등급이 된다.

이렇게 계산하면 2000학년도에 모두 3만4천7백34명(인문 1만8천61명, 자연 1만2천58명, 예.체능 4천6백15명)이 4% 이내에 들었다.

그러나 실제 수능등급 계산은 원점수가 아니라 변환표준점수(선택과목간 난이도차를 반영한 점수)를 기준으로 한다.

2000학년도의 경우 변환표준점수로 3백68.2점 이상을 받은 3만4천7백57명이 1등급에 속했다.

다단계 전형을 실시하는 한 대학이 1단계로 지원자격을 1등급으로 정할 경우 수능 만점자나 변환표준점수 3백68.2점을 받은 수험생이나 똑같은 위치에 서게 된다.

따라서 다음 단계인 영역별 점수나 학생부 성적, 논술과 면접 등으로 경쟁하게 된다.

이때문에 등급제는 수능 변별력 상실 논란과 함께 계열 변경 급증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2000학년도 수능시험 기준으로 2등급 이상을 지원자격으로 할때 인문계는 3백36.6점, 자연계는 3백56.0점, 예.체능계는 2백96.6점으로 최고 점수와 최저 점수간에 59.4점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계열간 교차지원을 허용하는 대학이 갈수록 늘고 있는 상황에서 수험생이 어떤 계열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등급이 달라질 수 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