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실직의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지만 "대책"이 없다는 데 그 심각성이 더하다.

무엇보다 실직을 당하더라도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수가 많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실제로 실직자 10명중 9명이 여러가지 이유로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일자리도 없는데 실직수당 마저 받지 못하니 앞날이 캄캄할 수 밖에 없다.

실업급여는 IMF(국제통화기금) 사태이후 만든 사회안전망의 핵심 제도다.

직장을 잃고 다른 일자리를 찾는 동안 국가가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주는 시스템이다.

사용주와 근로자가 평소에 임금총액의 0.5%씩을 내 적립해 두었다가 실직을 하면 최장 8개월간 퇴직전 임금의 50%까지 지급하게 돼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이상적이지 않다.

자격을 맞추지 못하거나 몰라서 전체 실업자의 11.4% 만이 실업급여의 혜택을 보고 있다.

실업자 10명중 9명에게는 실업급여가 "그림의 떡"인 셈이다.

지난 9월말 현재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실업자는 3만9천8백명.

당시 전체 실업자가 80만4천명이었지만 이들중 88.6%는 실업급여를 받지 못했다.

지난해 연간으로 치면 한국의 실업급여 수혜율은 12.5%였다.

독일(47.6%)이나 일본(39%),미국(36%)이 40% 안팎인 것과는 비교가 안된다.

실업급여 수혜율이 낮은 이유는 여러가지다.

가장 많은 사례가 "비자발적 실업"이다.

자신이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었거나 잘못을 저질러 직장을 그만둔 경우엔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게 돼 있는데 상당수가 이런 경우라는 것이다.

지난 10월말 현재 이직자 가운데 75.4%가 <>전직 <>자영업 <>결혼.출산.육아 <>징계해고 등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직장을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이더라도 주변의 눈치 등으로 어쩔 수 없이 그만둬야 하는 경우가 허다한 현실을 감안할 때 실업급여 지급요건이 너무 까다롭다는 지적이 많다.

일본 독일 등은 자발적 이직자이더라도 이직한 뒤 3개월이상 지나면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자격이 있으면서도 신청하지 않는 실업자도 적지 않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9월말 현재 실업급여 수급자격자 가운데 44.3%인 19만4천명만이 실업급여를 신청했다.

절차가 번거롭거나 금액이 작다는 등의 이유로 신청하지 않은 경우가 절반정도 였고 실업급여 제도가 있는 지 자체를 몰랐다는 사람도 15.5%나 됐다.

이렇게 아껴진 실업보험료가 엉뚱한 곳에 쓰이고 있기도 하다.

그동안 실업률이 낮았던 데다 지급요건이 엄격해 올들어 지난 9월말까지 실업급여보험료 수입은 1조8백1억원에 달했지만 지급액은 3천7백9억원에 머물었다.

7천92억원의 수지차(흑자)가 생긴 것이다.

이러다보니 곳곳에서 이 돈을 노리고 있다.

우선 쓰자는 정치적 압력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정부와 여당은 현행 60일인 출산휴가를 내년 하반기부터 90일로 연장하면서 추가로 발생하는 임금중가분의 절반을 고용보험기금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이로인해 내년중 고용보험기금에서 1백50억원이 지출된다.

실업자에게 갈 돈의 일부가 여성근로자에게 가는 것이다.

앞으로 출산휴가제가 활성화되면 매년 1천억원이상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반해 정작 보호가 시급한 2백40만명에 달하는 일용근로자는 시업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다.

고용보험 가입대상이 아니거나 실질적으로 가입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실업자에게 실업급여가 유명무실한 것처럼 경영난에 시달리는 사업주에게는 고용유지지원금 제도다 있으나 마나한 존재다.

얼마전 대구에서 열린 자동차업계 구조조정 대책회의에서 하청업체들은 "고용보험료를 일부 체납했더라도 고용유지지원금 지급대상에서 제외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당장 운영자금이 없어 고생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업주가 휴직수당을 먼저 지급한 뒤 나중에 고용보험에서 되돌려받는 방식도 도움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더군다나 청구나 우방 등 이미 부도를 낸 대형 건설업체들은 고용보험료를 체납하고 있는 상태다.

체납액이 전혀 없어야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할수 있는데 이들 기업의 경우 휴업을 해도 직원들에게 휴업수당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정철균 노동부 보험제도 과장은 "실업급여 수혜율을 높이기 위해 고용보험 가입대상에 일용근로자를 포함시키고 장기 실업자에게 추가로 실업급여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제도개선책이 언제나 실행될 지는 미지수다.

최승욱 기자 s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