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월 대학을 졸업하는 김태훈(경희대 경영학과 4학년.26)씨는 요즘 하루종일 인터넷 취업정보 사이트를 뒤진다.

눈만 뜨면 컴퓨터를 켜는게 아예 습관이 돼 버렸다.

학교에 가는 날도 인근의 인터넷방을 꼭 찾는다.

혹시나 일자리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다.

김씨는 지난 5월 정보처리기사1급 자격증을 딸 때까지만 해도 취업에 자신이 있었다.

경영학도로는 드물게 정보통신관련 자격증을 갖춘 "준비된 사회 초년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상황을 실감하고 있다.


원서를 내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이달 들어서는 채용공고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김씨는 "주변에서는 ''눈높이''를 낮추라고 하지만 ''눈높이'' 문제가 아니다"며 "아무래도 취업 재수를 해야할 것 같다"고 토로한다.

지난 8월 동국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김경희(27)씨.

거금 2천만원을 들여 영국 케임브리지 랭귀지스쿨에 어학연수까지 다녀왔다.

그러나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동국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취업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김씨는 "전공을 살린다는 생각은 잊은지 오래"라며 "비서직이든 영업직이든 합격만 되면 혼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본격적인 취업 시즌이지만 대학가는 ''한겨울''이다.

어쩌다 신입사원을 뽑으면 경쟁률이 보통 수백대 1이다.

''전쟁''이나 다름없다.

그나마 무더기 퇴출 발표가 나온 이후 신규채용 계획을 가지고 있던 회사까지 당초 계획을 취소했다.

대학 졸업예정자 가운데 남자 복학생들은 3년전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때보다 더 참담함을 느낀다.

직장을 구하기 어렵다기에 군대에 갔다 왔더니 3년만에 다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그래도 그땐 상황이 호전되면서 벤처기업 붐이 일어 어느정도 일자리가 해소됐지만 이번엔 그 희망도 없다.

오히려 벤처기업들도 인력을 줄이느라 혈안이다.

중앙대 취업정보실 이한기 과장은 "이름을 알만한 기업에서는 지원서가 아예 끊겼다"면서 "간간이 영세기업에서 구인요청이 오는데 지원자가 줄을 선다"고 상황을 설명한다.

''취업난''의 차원을 넘어 ''취업대란''이 벌어지고 있다는게 이 과장의 진단이다.

동국대 취업정보팀 신봉근 팀장은 "지난 8월 말까지만 해도 대기업들이 올 하반기에 2만명 가량을 신규채용할 계획이라는 전망이 나왔었지만 9월 말부터 이런 얘기가 쑥 들어갔다"고 말한다.

그는 "국내 대기업 전체를 합쳐도 하반기 채용규모는 8천명도 안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학생들 사이에서는 ''3무(三無)''라는 말이 퍼져 있다.

업종과 급여, 근무지를 따지지 말라는 것이다.

무조건 취직해 일자리를 확보한 뒤 세월이 좋아지면 다시 고르자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사정은 ''3무''조차도 허용하지 않을 분위기다.

거품논쟁과 도덕성 시비로 휘청거리는 벤처업계, 주가폭락으로 허우적대는 증권사, 2차 구조조정을 앞둔 은행권, 무더기 퇴출판정을 받은 제조업체와 건설업체….

극심한 취업난은 ''탈(脫)캠퍼스'' 바람이라는 또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다.

대학마다 대량 휴학사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IMF사태 이후 나타난 대규모 휴학사태가 지방대에서 이제는 서울 소재 대학으로까지 급속히 번지고 있다.

조만간 개선되지 않고 장기화될 추세라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한양대의 경우 2학기 들어 재적생 2만2천3백60명 가운데 7천9백38명이 휴학, 35.5%의 휴학률을 기록했다.

서강대는 3천8백34명이 휴학해 재적생(1만7백78명)의 35.6%가 일시적으로 학교를 떠났다.

7천1백37명이 휴학한 연세대는 휴학률이 28.9%로 30%선에 육박했다.

서울대는 2학기 휴학생이 2천6백97명(11.4%)으로 1학기보다 5백15명 늘었다.

고려대도 휴학률이 16.4%에 달한다.

연세대 김농주 취업담당관은 "현재 취업재수생 17만명과 졸업예정자 18만명 등 35만명 가량이 좁아진 구직시장에서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공과 민간부문의 정규직과 임시직을 모두 합쳐도 일자리는 연간 8만5천여개에 불과하다는게 김 담당관의 설명이다.

인력시장의 수급 분석과 고용촉진 정책의 근간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지 않으면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는게 그의 지적이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