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회의가 열리는 행사장 한켠엔 으레 조그만 부스가 있게 마련이다.

유리창 너머 부스속에선 헤드폰을 쓴 동시통역사들이 마이크에 대고 연신 말을 쏟아낸다.

서로 다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불편함없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언어의 장벽을 허물어 주는 사람이 동시통역사들이다.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중인 동시통역사는 줄잡아 70~80명선.

이들 대부분은 여성이다.

특정한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프리랜서로 일해야 하는 직업의 특성과 섬세한 언어 표현감각이 요구되기 때문에 남성에 비해 여성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지금까지는 영어와 일본어에 편중돼 있었지만 세계 각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다른 언어의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컴퓨터 영화 등 특정 분야에 관한 전문지식을 갖춘 전문 통역사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 동시통역사의 세계 =일본어 동시통역사 안영희(34)씨.

올해로 경력 11년째인 안씨는 베테랑 동시통역사로 불리지만 통역일을 할 때는 늘 시험을 치르는 듯한 긴장감을 느낀다.

일본어를 우리말로 옮기거나 우리말을 일본어로 즉시 바꿔야 하는 일이다 보니 긴장을 잠시도 늦출 수 없다.

그만큼 높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단 마이크를 잡으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안씨는 "팽팽한 긴장감속에서 일하는게 동시통역사가 갖는 묘한 매력"이라고 말했다.

5년째 영어 동시통역사로 활동중인 안은영(30)씨는 동시통역사는 "투명인간"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중이 동시통역사의 존재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강사가 말하는 속도에 맞춰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또 커다란 이해관계가 걸린 국제 협상 테이블에 참여할 경우엔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는 직업윤리도 발휘해야 한다.

동시통역사들은 국제회의나 세미나, 심포지엄 등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이같은 행사들은 성격에 따라 매번 다루는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에 동시통역사들은 행사 일정이 잡히면 해당 분야에 대한 기초지식과 용어를 공부하는 일로 바빠진다.

신문 잡지 등을 가까이 하면서 국내 문제는 물론 국제 동향에 대한 상식을 얻는 일도 게을리해선 안된다.

스페인어 동시통역사로 9년 경력을 쌓은 성초림(34)씨는 "동시통역사가 겉으론 화려하고 편한 직업처럼 보이지만 항상 자신의 실력을 갈고 닦아야 하고 새로운 분야에 대한 연구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분 정도의 대화 내용을 암기할 수 있는 기억력과 순발력도 동시통역사가 반드시 갖춰야 할 능력이다.

8년째 중국어 동시통역사로 뛰고 있는 김선경(32)씨는 "강사가 말을 너무 느리고 길게 하는 경우 동시통역사에게는 강연 내용을 기억하면서 통역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강연 도중 갑자기 강사가 농담을 하면 이를 있는 그대로 통역해 봐야 청중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럴 때야말로 동시통역사가 순발력과 재치를 발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동시통역사가 되려면 =한국외국어대 통역번역대학원에 진학해서 석사과정을 마치는게 정통 코스다.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중국어 독일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아랍어 등 8개 언어에 대한 교육과정이 마련돼 있다.

이와함께 지난 97년 문을 연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을 통해서도 동시통역사가 될 수 있다.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등 3개 언어의 동시통역을 가르치고 있다.

내년부터는 일본어 동시통역 과정도 마련된다.

이들 대학원은 입학만큼이나 졸업이 어렵다.

때문에 중간에 탈락하는 사람도 많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