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하다 정년퇴직한 뒤 놀고 지내던 류모(69)씨는 최근 40여년을 함께 살아 온 조강지처로부터 느닷없는 이혼장을 받았다.

막내 아들의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갈라서자는 것이다.

아내는 "그동안 참을만큼 참았다"며 "재산의 절반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아내 권모(67)씨 쪽의 자세는 완강하기 짝이 없었다.

10년이상 이 순간이 오기를 별렀다고 한다.

''승진''을 이유로 툭하면 외박을 하고 자신을 쥐어박던 남편을 언젠가는 쫓아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대화 한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고 말만 꺼내면 "여편네가 뭘 안다고…"라며 무시당했다고 가슴속에 맺힌 말을 쏟아냈다.

게다가 요즘에는 남편의 바람끼가 노인들의 친목모임에서까지 재발했다고 한다.

이들은 끝내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지난주 서울 봉천동의 한 예식장에서는 60을 넘긴 노부부의 결혼식이 있었다.

알록달록한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맞절을 했다.

자식과 손자 등 주위의 축복을 만끽했다.

둘 다 배우자와 사별하고 15년이상 혼자 살다가 뒤늦게 ''신방''을 차린 케이스다.

이같이 노인들의 ''황혼이혼''과 ''황혼결혼''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나이는 문제가 아니다.

말년에라도 ''행복''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는 옛날 얘기다.

특히 남편의 권위와 폭력에 시달린 여성노인들의 ''독립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늦결혼도 그리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재산문제만 해결되면 혼자 살아야 할 까닭이 없다는 게 요즘 노인들의 생각이다.

이같은 추세는 실제 통계로 잘 나타난다.

통계청이 조사한 99년 인구동태 자료에 따르면 20년이상 같이 살다가 이혼한 건수가 90년 1천8백건에서 작년에는 1만2천건으로 무려 7배 가까운 규모로 늘어났다.

지난해 전체 이혼건수 가운데 이들의 비율이 무려 10.2%나 된다.

그런가 하면 55세가 넘어 혼인하는 사람도 지난 90년 남자 2천9백명,여자 1천명에서 99년에는 남자 5천6백명,여자 2천2백명으로 증가했다.

재혼하는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같은 기간 38.9세(남자 기준)에서 42.2세로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이에대해 "과거에는 노년의 생활을 자식에게 기대어 사는 ''여생''으로 여겼지만 지금은 평생을 열심히 살아온 보상으로 주어지는 안락하고 편안한 휴식의 날로 여기고 있다"며 노인들의 삶에 대한 가치관 변화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김미혜교수팀이 홀로 사는 60세 이상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23.8%는 재혼을 원하고 있으며 특히 남성 독신노인은 44.9%가 재혼의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버왕국으로 불리는 일본의 경우는 진작부터 노년이혼이 급증,''나리타의 이별''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막내 아들의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보낸 후 나리타공항에서 갈라선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전문가들은 이제 자녀들의 인식변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황혼이혼이나 황혼결혼을 선택해야 할 경우 ''남들의 시선''보다는 ''노인의 삶''을 가장 우선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유택 기자 chang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