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장모(34)대리는 경기도 일산의 집에서 여의도에 있는 회사로 출근하기 위해 이른 아침 버스에 올랐다.

그는 지난 밤 늦게까지 일을 해 모자라는 잠을 버스에서 보충하고 싶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버스운전사가 대중가요를 크게 틀어놓았기 때문이다.

볼륨을 낮춰달라고 요구했지만 ''그냥 놔두라''는 다른 승객의 요구에 묵살당했다.

장 대리는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트로트 가요를 1시간 내내 들어야 했다.

회사에 출근했지만 시끄럽기는 마찬가지.

오전 내내 시위대가 틀어놓은 선동가요와 꽹과리 소리를 들어야 했다.

가뜩이나 잠이 부족해 정신없는 상황에서 시끄러운 소음 때문에 하루종일 멍하게 지냈다.

거의 매일 시위군중이 몰려드는 국회의사당 앞에 사무실이 있는 그는 ''시위대''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점심시간에 식당으로 가던 장 대리는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수많은 판촉물로 짜증이 더해졌다.

인근 술집에서 나온 웨이터와 아가씨들이 라이터 휴지 부채 등을 억지로 안겼기 때문이다.

사무실에도 툭하면 판촉사원들이 찾아와 유인물을 던져놓고 가기도 한다.

식당에 가서도 장 대리는 자유롭지 못했다.

다른 손님들이 피워대는 담배연기에 연신 기침을 해댔다.

메뉴도 마음대로 고르지 못했다.

직장상사가 "''단합을 위해'' 음식을 통일하자"고 제안해서다.

퇴근후 회식자리에서 장 대리의 괴로움은 극에 달한다.

주량이 맥주 한두잔인 장 대리는 그날도 저녁모임에서 폭탄주 세례를 피할 수 없었다.

마시지 않으면 ''왕따''당하기 때문에 억지로 밀어넣었다.

장 대리는 뒤틀리는 속을 달래면서 끝내 노래방까지 끌려가 악을 써야했다.

동료들은 ''음치''인 장 대리의 노래를 들으면서 박장대소하지만 장 대리는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강요문화''가 우리 사회를 이렇게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자신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일방통행식 강요문화가 아예 ''토착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조직생활의 틀에 짜여 ''노(No)''가 용납되지 않는 샐러리맨들을 더욱 지치게 만드는 요인이다.

외국인에게는 더욱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업 때문에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이나 유럽 출신 외국인들은 스스럼없이 행해지는 ''한국식 강요''에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C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인 A(33·여)씨는 "조금 뚱뚱한 편인데 아무렇지도 않게 몸무게를 물어오는 통에 당황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더군다나 ''결혼했느냐'' ''남편도 뚱뚱하냐''고 물어올 때는 뭐라고 말해야 좋을 지 모르겠다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살다보니 그런대로 익숙해졌지만 잔을 돌려 술을 강권할 때는 아직도 거부감이 든다"고 말했다.

그녀는 "한국에서는 ''생존경쟁''이 지나치게 심해 남을 배려하려는 태도가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연세대 이훈구 교수는 "오랫동안 집단적 사고와 행동양식에 지배돼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경시하는 인식이 만연해졌다"며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인식이 보편화될 때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