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선 유치원생들도 김정일 장군님께 편지를 올린단다.그러면 장군님은 이를 다 보시지" "주석께서 나를 불러 이걸(시계) 주시지 않았겠니.내가 뭘 한게 있다고…"

반세기만에 혈육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측 방문단이 한 말이다.

부모형제를 부둥켜안고 울먹이면서도 빠트리지 않았다.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다가도 어느 새 정신을 차리고 똑같은 말을 해댔다.

생후 8개월 때 헤어진 아버지를 찾아온 ''늙은'' 아들은 양복에 훈장을 가득 달고 나타났다.

"사회주의 건설과 군사복무에 노력한 공로로 국가1급 노력훈장 등 무려 16개의 훈장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한두번 본 장면이 아니지만 ''그러려니''하고 넘어가기엔 어색함이 없지 않다.

가족의 생사확인을 하다가도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장군님'' 얘기에 순간 분위기가 썰렁해지기도 한다.

핏줄만큼이나 깊이 자리잡은 체제와 이념.헤어진 가족을 만난 기쁨과 똑같은 크기로 느끼는 ''당(黨)에 대한 감사''.그저 TV카메라 앞에서 하는 ''의식''의 차원이 아니었다는 게 남쪽 가족들의 평이다.

"떨어져 살았던 기간이 너무 길었구나…" 하는 탄식만이 이 어색한 장면을 소화시켜 줄 수 있었다.

어느 게 옳고 그르다고 갈라놓기엔 이미 ''체질화''된 이들의 언행은 분단의 비극이 안겨준 상처였다.

인식뿐이 아니다.

아예 ''말''까지 달라져 있었다.

''피곤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일없다''는 답변이 나왔다.

여기서는 ''거절''의 뜻으로 쓰이는 말이 북쪽에서는 ''괜찮다''는 의미로 변해있었다.

''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말이 있다.

남쪽의 귤나무를 추운 북쪽 땅에 옮겨 심으면 탱자나무가 된다는 얘기다.

북에서 상태가 나빠졌다는 뜻이 아니다.

환경이 달라지면 생리가 통째로 바뀐다는 말이다.

이번 상봉은 사람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철조망을 걷는다고 통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그래서다.

분단 반세기 동안 켜켜이 쌓인 문화적 이질감을 걷어내고 깊이 팬 의식의 골을 메워주는 게 철조망 제거보다 더 급하다는 말이다.

장유택 사회부 기자 chang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