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이 시행되면서 제약회사들의 횡포가 심해지고 있다.

도매상에 현찰이나 담보를 요구하면서 약을 공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약값을 턱없이 올려받고 있다.

의약분업으로 약국의 약품 수요가 늘어나자 ''배짱''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병원에서 외래환자에게 원외처방전을 발행해도 약국에 약이 없어 환자들이 애를 먹는 것도 바로 제약회사들의 고압적인 자세 때문이다.

특히 꼭 필요한 전문의약품이나 잘 알려진 오리지널 약품의 경우 포장단위를 바꾸거나 성분을 약간 변경했다는 이유로 출하가를 대폭 올려 약국들의 원성이 높다.

"의약분업으로 살판 난 것은 제약회사 뿐"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약품 공급 거절=제약회사들은 요즘 약국과 도매상에 약을 제대로 주지 않고 있다.

도매상의 체질이 허약할 뿐만 아니라 의약분업제도가 어떻게 바뀔지 몰라 약국을이 반품을 요구할 경우 재고처리가 어렵다는 이유다.

제약회사들은 도매상이나 약국에 현찰이나 담보를 내놔야 약을 주겠다고 버티고 있다.

담보도 턱없이 많이 요구해 도매상과 약국들이 애를 먹고 있다.

도매업체 관계자는 "예전에는 신용거래가 이뤄졌고 담보라고 해봐야 구입액의 50-70%만 제공하면 됐지만 지금은 1백% 담보를 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특히 스위스의 다국적 의약품 유통업체인 쥴릭이 외국계 제약회사의 전문치료제 유통권을 틀어쥐면서 약품 경색이 심해졌다.

쥴릭은 40여개 도매상에만 약을 주고 있을 뿐 영세 도매상이나 약국과는 일절 거래를 하지 않고 있다.

<>약품 가격 폭등=최근들어 항생제 당뇨병약 고혈압약 등 전문치료제의 출하가격이 평균 30-40% 올랐다.

두 배까지 뛴 것도 상당수다.

보령제약의 ''듀리세프''(항생제.이하 한캅셀 또는 한정 기준)는 3백50원에서 5백50-6백원으로 올랐다.

유한사이나미드의 ''미노사이클린''(항생제)은 2백원에서 3백원으로 인상됐다.

중외제약의 ''메바코''(콜레스테롤저하제)는 5백50원에서 8백원으로 올랐다.

외국계 제약회사의 제품은 아예 품귀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일부터 파업중인 한국화이자의 ''노바스크''(혈압약)는 5백원에서 5백30원, ''바이브라마이신''(항생제)은 2백60원에서 3백20원으로 출하가격이 인상됐다.

순전히 품귀에 따른 인상이다.

중견업체가 아닌 곳도 요즘 특수를 누리고 있다.

약 조제에 감초처럼 쓰이는 한영제약의 ''트리메틴''(소화기능촉진약)은 14원에서 30원으로 갑절이나 뛰었다.

한독약품은 ''훼스탈''(소화제)을 ''훼스탈 플러스''로 바꾸면서 한정당 출하가를 1백10원에서 1백60원으로 기습인상했다.

성분이 좋아졌다는 게 회사측의 주장이다.


<>약값 상승 이유=의약분업으로 약국들이 처방약을 갖춰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소형약국은 8백종, 대형약국은 2천종 이상 구비해야 원활하게 원외처방을 처리할수 있기 때문에 전문치료제에 가수요가 붙었다.

소비자들의 약품 사재기도 한 원인이다.

서울 종로5가 백수약국의 채석병 약사는 "의약분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에 당뇨약 혈압약 항생제 등을 사두려는 환자들이 몰려들어 일부 전문의약품은 웃돈을 주고 확보했다"고 말했다.

약국들은 앞으로 제약사들이 약값을 더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제대로 받지 못한 약값을 이번 기회에 만회하겠다는 게 제약회사들의 자세다.

앞으로 영세 제약사들이 퇴출되고 대형사들의 과점체제로 시장이 운영될 경우 제약회사들의 고압적 자세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약국들의 인식이다.

이에따라 약국이 갖던 5~15%에 이르는 마진도 제약사들이 약가 인상분으로 흡수할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런데도 제약회사들은 정부의 보조를 요구하고 있다.

포장을 바꾸고 약효동등성 시험을 하는 데 돈이 들어간다는 이유다.

요즘 일고 있는 폭발적인 수요는 일시적인 가수요이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이 시급하다는 게 제약회사들의 주장이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