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서초구 법원 근처에 있는 H법률사무소에 말쑥한 정장차림의 남자 두명이 들어왔다.

일반인들에게도 꽤 알져진 B변호사를 찾아온 이들은 두툼한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소송이나 법률 상담과 관련된 서류 뭉치가 아니라 벤처기업의 사업계획서였다.

인터넷으로 부동산 컨설팅을 하는 벤처기업을 설립했다는 이들은 B변호사에게 회사의 고문 변호사를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물론 상당한 규모의 스톡옵션도 제시했다.

별도의 사무실과 차량, 비서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자금을 투자하기로 "잠정적으로 합의"했다는 대형 투자회사들과 전주의 이름까지 까지 공개하면서 "당분간 비밀을 유지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B변호사는 이들이 간 뒤 뒷조사를 해 본 결과 ''유령 벤처기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투자를 약속한 곳들도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사무실도 여러차례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B변호사는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시들해 지고 인터넷 공모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예정이어서 알려진 인사를 내세워 ''한탕'' 하려는 사기꾼들이 설치고 있다"고 말했다.

벤처기업의 산실인 테헤란 밸리에 요즘 이같은 ''가짜 벤처인''이 날뛰고 있다.

지난 2개월 동안 서울지검 산하의 지청에서만 이같은 사기꾼 조직 10여건이 적발됐다.

전국적으로 치면 상당히 많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터넷으로 10억원 미만의 자금을 공모하는 소액공모에 대한 규제가 조만간 강화될 예정이어서 막바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사법당국에 적발돼도 구체적인 투자자들의 피해내역이 밝혀지지 않아 제대로 처벌도 받지 않는 실정이다.

이들은 ''무늬'' 조차도 없이 번듯하게 만든 사업계획서만 달랑 가지고 다닌다.

이들은 <>투자자금 조달원 <>확실한 수익모델 <>오프라인과의 연계 <>잠정적으로 확정된 회원명단 등 세밀하게 짜여진 사업계획서를 내놓는다.

그리고 변호사 공인회계사 등 전문직과 고위공무원 출신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고문''으로 명함만 빌려달라는 것이다.

일부 인사들은 당장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사업계획이 너무 완벽해 쉽게 서명을 해 준다고 한다.

''알만한'' 다른 사람의 가짜 서명까지 제시해 꼼짝없이 당한다는 것.

이들은 유명인사가 섭외되면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모아 빼돌리는 수법을 쓰고 있다.

인터넷으로 공모를 하는 경우도 있다.

B변호사에 따르면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모 탤런트도 가짜 벤처에 속아 ''비상임 홍보담당''을 맡았다가 자금을 댄 투자자들로부터 곤욕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무상으로 주식을 받았던 모 공인회계사는 검찰에 소환되기도 했다고 한다.

가짜 벤처기업들은 주로 부동산 컨설팅이나 금융 컨설팅, 투자정보 제공 회사를 내세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조업과는 달리 사업계획서를 쉽게 작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투자자들을 유혹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쉬운 업종이다.

외국 회사의 선진기술 라이선스를 들이대며 ''떼돈''을 벌 수 있다고 속이는 경우도 더러 있기는 하다.

사무실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것도 특징이다.

사무실 위치를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확장이전을 추진 중''이라고 둘러댄다는 것이다.

오세오닷컴의 최광석 변호사는 "벤처기업에 투자하라는 문의와 고문 변호사를 맡아달라 제의가 여러번 있었다"며 "전문직이건 일반 투자자이건 상담기관을 찾아 옥석을 가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충고했다.

< 김문권 기자 mkkim@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