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꿈에 돌아가신 아버님를 뵈었는데 이게 진정 꿈은 아니겠지요.

이제는 죽어도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4일 남북정상이 "이산가족 상봉문제"를 전격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50여년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온 실향민들은 환호와 함께 기쁨의 눈물을 터뜨렸다.

평양에 부인과 두 딸을 두고 왔다는 실향민 김동남(79)씨는 "어린 딸들과 같이 내려오지 못해 평생을 죄인의 마음으로 살아야 했었다"며 "혈육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꽃다운 젊은 아내와 헤어졌는데 지금은 나이가 많아 생사조차 확신할 수 없다"며 "제발 살아있어서 지난 반세기동안 진 빚을 갚을 수 있는 기회라도 줬으면 좋겠다"며 목이 메었다.

함남 함흥에 어머니와 누이들을 두고 온 장중식(70)씨도 "6.25전쟁중에 같이 월남한 남동생 두 명이 모두 전사하고 혈육하나 없이 50년간을 살아왔다"면서 "어머님은 이미 돌아가셨겠지만 누이동생이라도 찾을 수 있게 된다면 평생의 원을 푸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늦게 서울역과 고속버스터미널 등에 모여 대형TV로 남북 4개항 합의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일제히 "와"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를 치며 기쁨을 나눴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최희식(50)씨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쪽 TV를 통해 실향민과 탈북자가 눈물흘리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했을때부터 좋은 일이 있을 것으로 예감했다"며 "두 정상이 만나 이산가족 상봉이란 인도적인 문제부터 뜻을 같이한 만큼 머지않아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갖게 됐다"고 시종 환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남북이산가족 찾기가 추진된다는 소식이 전국에 알려지자 식당과 술집 등에서도 온통 통일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 넘쳤다.

국민들은 이산 가족 상봉에 이어 경제 협력 등 향후 전망등 으로 화제를 돌리면서 달라질 조국의 미래와 한반도 상황을 그려보는데 여념이 없었다.

실향민 2세라는 김만규(43)씨는 "오늘은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된 이후 가장 기쁜 날로 기록될 것"이라며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에 들어간 이후 힘겨운 날을 지내온 우리 국민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새로운 도약을 마련할 수 있는 전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북한 어딘 가에 살고 있을 친척들에 대해 갑자기 많은 궁금증이 생긴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호적이라도 추적해서 친척을 반드시 찾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북5도 위원회 심기철 평북지사는 "실향민들에게 이산가족 찾기는 한마디 말로 표현하기 불가능할 만큼 복잡한 감회를 지니고 있다"며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일이 이뤄진 만큼 20여년전 모 방송사에서 펼쳤던 이산가족 찾기 보다도 훨씬 강렬한 기쁨과 통한의 감정이 오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장유택 기자 changyt@hankyu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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