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의 원로 한경직 목사가 19일 오후 1시 15분 서울 중구 저동 영락교회에서 향년 98세로 타계했다.

1902년 평남 평원 출생인 한 목사는 평양 숭실대와 미국 엠포리아대, 프린스턴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933년 신의주 제2교회 목사를 시작으로 목회의 길에 들어섰다.

73년 자신이 설립한 서울 중구 저동 영락교회의 원로목사로 추대된후 목회일선에서 물러나기까지 한국교회를 부흥시키는 초석역할을 담당했다.

가족은 한순희(주부)씨와 한혜원(재미목사)씨 등 1남1녀를 두었다.

장례는 24일 오전(시간 미정)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으로 치러지며 장지는 경기 남양주 진건면 사능리의 영락동산이다.

빈소는 영락교회에 마련됐다.

(02)2273-6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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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직목사 삶과 신앙 ]

19일 타계한 한경직목사는 평생을 목회활동에 전념해 온 목회자였다.

그는 특히 보수진영을 상징하는 한국교회의 산 증인으로 개신교계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뚜렷하게 각인돼 있다.

신의주 제2교회 목사때는 고아원을 설립해 10년동안 가난한 어린이들의 의지처가 되기도 했다.

해방과 동시에 서울로 내려온 그는 영락교회를 창립한 뒤 복음화에 앞장섰다.

그는 서울에서도 고아원과 경로원 모자원을 설립하는 한편 홀트양자회 이사장을 지내는 등 어려운 이웃을 보살펴왔다.

대광학원 보성학원 이사장과 숭실대 학장 및 이사장을 역임하고 영락중고교 영락여자신학교를 설립하는 등 육영사업에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55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제40대 총회장으로 선출된 한 목사는 1983년에는 한국기독교 1백주년기념사업회 총재에 취임함으로써 한국교회의 명실상부한 대표자로 인정받았다.

이후에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로 일하는 등 한평생을 교회와 사회를 위해 헌신했다.

그는 또 90년에는 사랑의 쌀나누기운동을 주도함으로써 나눔운동을 몸소 실천해보였다.

그의 이같은 공로가 높이 평가돼 92년에는 종교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 목사는 말년을 경기도 광주군 남한산성 내의 20평짜리 교회사택에서 사위 이영묵 목사 내외와 함께 지내다가 최근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영락교회로 옮겨왔다.

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저금통장을 가지지 않고 오로지 청빈한 삶으로 일관해 교계의 존경을 한몸에 받아왔다.

한 목사는 말년을 경기도 광주군 남한산성 내의 20평짜리 교회사택에서 사위 이영헌 목사 내외와 함께 지내다 최근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영락교회로 옮겨왔다.

< 윤승아 기자 ah@k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