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관광"이다.

방대한 문화유적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멋진 의류와 핸드백 구두 등을 싼값에 구입할 수 있는 "쇼핑의 천국"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노사관계 모범국가"라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국가 경제의 주력은 중소기업.

전체 기업수의 99.3%를 차지하면서 고용의 80%,수출의 65%를 도맡고 있다.

특유의 장인정신과 가업계승 전통에 힘입어 섬유 의류 가구 피혁가공 염색 등의 분야에서 전세계 "넘버 1"을 자랑하고 있다.

벤처입국을 지향하는 우리로서 본받을 만한 중소기업이 곳곳에 널려 있다.

이뿐만 아니다.

노.사.정간에 한번 맺은 약속은 철저히 지킨다는 점이야말로 벤치마킹할 강점이다.

이탈리아는 지난 1970년대초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극대화되면서 임금을 물가지수에 따라 자동적으로 인상하는 "임금조정 연동제"를 채택해 시행해 왔다.

그러나 이 제도는 오히려 근로자의 생활수준을 끌어내리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물가상승으로 임금을 올리고 여기에 정부의 재정지출이 확대되면서 다시 물가를 인상시키는 악순환을 몰고왔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1992년 9월 정부와 노조대표가 이 제도를 폐지하기로 합의하게 됐다.

그러면서 노.사.정간에 인플레와 국내총생산 및 고용목표 등을 협의키로 결정했다.

수개월간의 논의 끝에 이듬해인 93년 7월 정부와 노사단체 대표들은 임금상승률을 정부가 제시하는 물가상승률 억제목표 이내에서 맞춘다는 내용의 "수익에 관한 정책협약"을 체결했다.

그 뒤 노.사.정 대표는 1년에 두차례 이상 모여 합의사항의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등 제도 정착에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94년부터 97년까지의 물가상승률은 2.0~5.2%였으나 임금인상률은 2.5~3.6%에 그쳤다.

이것이 물가안정으로 이어져 지난 91년만 해도 6.5%에 달했던 물가상승률은 97년 들어 2.0%로 낮아졌다.

이와 관련,달레마(D"Alema) 총리의 경제특보인 에피지오 에스파( Efiso Espa )는 "인플레가 억제됨에 따라 근로자의 실질임금 수준은 오히려 향상됐다.

사회협약으로 금리하락 물가안정 재정적자 감축이라는 세마리 토끼를 잡아 유로화 초기사용국가로 참여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지난 98년 8월 이 협약의 유효기간을 5년간 추가연장한 이탈리아는 올해 경제성장률 2.8%,물가상승률 1.5%라는 야심찬 목표를 달성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사회협약을 이렇게 모범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이탈리아에 비해 우리나라는 노사정위원회라는 별도의 상설기구가 마련돼 있는데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고 있다.

신뢰 상실과 상호불신으로 노.사.정의 대화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지난 98년 1월 노.사.정 대표들은 90개 사항에 합의했지만 2년이 지나도록 63개 항목만이 실천된 상태다.

실업자의 초기업단위 노조 설립 허용문제는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등 당초 약속을 일부 바꾸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민주노총은 노사정위를 아예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한국노총도 상황에 따라 탈퇴와 복귀를 일삼고 있다.

로마=최승욱 기자 swchoi@ 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