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은 전적으로 미국의 참전 덕분일 것이다.

당초 미국은 연합국의 간절한 참전요청을 모두 거부한채 중립노선을 견지하며 엄청난 전쟁특수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1917년 미국은 갑자기 이 전쟁에 뛰어들었고, 1년반뒤 독일을 항복시킨다.

미국은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꿨을까?

많은 학자들은 독일이 보낸 비밀전보 한장이 미국참전의 결정적계기가 됐다고 지적한다.

멕시코와의 동맹관계를 제의하는 독일의 이 암호전문은 영국에 의해 해독돼 미국에 건네졌고, 윌슨 미대통령은 이를 준선전포고로 간주해 참전을 결정한다.

1941년 12월, 일본은 진주만 대공습을 감행하여 미국의 태평양함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다.

건국이래 최초의 영토침범을 당한 미국은 충격과 분노에 휩싸여 즉각 개전을 결의한다.

이른바 태평양전쟁의 서막이 올려진 것이다.

다음해 6월 일본은 세계해전사상 최강의 정예부대를 앞세워 태평양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한 건곤일척의 승부를 건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의 암호를 해독해 그 공격목표가 미드웨이섬이라는 것을 사전에 파악한다.

결과는 일본역사가의 표현대로 이순신장군에의 참패이래 가장 철저한 궤멸을 당하고 만다.

이처럼 암호는 세계사의 흐름을 뒤바꾸는 중대한 요소로 작용된다.

비단 전쟁에서 뿐만이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많이 활용되는 암호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해 그 중요성이 더욱 더 강조되고 있다.

더구나 인터넷의 폭발적인 성장 이면에 도사린 해커들의 위협은 이제 남의 일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방성, FBI, 야후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침입하는 사례가 일상적일 정도로 표면화되고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이에 따라 각 기관이나 기업체마다 암호의 관리가 중요한 전략적 테마로 자리잡고 있다.

오늘날 미국에서 수학자들이 가장 많이 일하는 직장이 정보기관과 금융기관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암호의 개발과 해독을 둘러싼 치열한 전쟁은 아마도 정보화시대의 영원한 난제일지도 모른다.

마치 바이러스와 항생제의 최후 승자를 쉽사리 점칠수 없는 것 처럼.

[위성복 조흥은행 행장] ceo@ch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