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놓아" "막아" "나오라 그래"

시장판에서 벌어진 패싸움이 아니다.

27일 오후 정부 과천청사 안내동에서 벌어진 몸싸움 장면이다.

올해 처음 치르는 한약사시험에서 응시자격을 받지 못한 약대생의 학부모
들이 청사진입을 시도하자 전경들이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터진 고성이다.

"중고등학교 입시요강도 최소한 1년전에 발표합니다. 그런데 국가자격시험
에서 3개월 전에 새로운 이수과목을 발표한다는 게 말이 되는 겁니까.
직무유기 아닙니까"

학부모들이 "직무유기"를 거론하며 따지자 복지부 담당국장은 답변을 하지
못했다.

"직무유기론"은 학부모들이 꺼낸 얘기가 아니다.

복지부 일각에서도 "유죄 인정론"이 나왔었다.

자칫하다간 제2의 한약분쟁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자 아예 "함구령"이
내려졌다.

바꾸면 사고가 더 커지니까 그대로 밀고가라는 것이었다.

이러니 대화가 진행될 리 없다.

한 약대생 아버지는 "법만 믿고 한약공부한다고 4년동안 방학도 반납한
애들입니다. 떨어져도 좋으니 응시기회라도 주십시요"라며 두손을 모으고
빌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법에 따라 그동안 내린 결정을 철회할 수는 없습니다.
조만간 한약사의 장기발전 방향을 모색할 협의체를 구성하겠습니다"고
답변했다.

완전히 동문서답이었다.

학부모들은 대화가 진행되지 않자 장관면담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책 최고책임자에게 듣겠다는 주문이다.

신통한 답변을 할 수 없었던 복지부 관계자들은 전경들 사이로 총총히 빠져
나가버렸다.

"해명"마저도 피하는 복지부의 강경자세는 28일 국가고시 집단거부라는
초유의 사태를 몰고 왔다.

약사고시에 응시원서를 낸 사람의 58%가 결시를 한 것이다.

이날 아침 약사고시가 치러진 서울 서초동 서울고 정문앞에는 시험장 안에
있어야 할 약대생들이 시험을 거부한 채 침묵시위를 벌였다.

"시험을 안 보면 대학 4년동안 공부한 것이 무위로 그치는 데 일단 시험은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약대생들은 피식 웃고 말았다.

"엉터리 정부에서 주는 자격증을 어떻게 인정하냐"는 대답이다.

한마디로 국가권위에 대한 부정이었다.

안타까운 장면을 지켜보던 한 경찰관의 질문이 정곡을 찔러 왔다.

"이 지경이 되도록 누구 하나 책임을 졌습니까?"

< 김도경 사회1부 기자 infofest@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