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출보험공사가 중국법원의 판결을 믿지 못하겠다며 중국에서 항소를
포기, 국내 법원에 제소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해외소송의 경우 타국에서 판결을 받을 경우 일반적으로 이를 인정해
국내에서 제소하지 않는 것이 관례.

하지만 수출보험공사는 "중국법원이 엉터리 판결을 했다"며 사건을
국내법원에 들고 온 것이다.

이같은 소송은 흔치 않은 것이어서 국내 법원은 신중한 검토끝에 "그래도
중국판결을 존중해야 한다"며 5일 수출보험공사의 소송을 기각했다.

결국 수출보험공사는 끝까지 중국에서 항소 등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며
다퉜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사건개요 =이 사건은 중국공상은행측이 자사가 개설해준 신용장대금의
지급을 거절하면서 촉발됐다.

국내 한 무역업체는 지난 96년 2월께 오리털의류 부자재 38만여달러를 중국
의류업체에 수출했다.

중국공상은행은 당시 수입업체의 의뢰를 받아 "취소불능화환신용장"을
개설해줬다.

하지만 수입업체가 물건에 트집을 잡으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수출업체로부터 38만여달러의 환어음과 신용장을 인수했던 국민은행이
돈을 못받게 된 것.

한국수출보험공사는 보험계약을 체결한 국민은행측에 사고 보험금을 내준
뒤 중국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 중국재판 =수출보험공사는 1심결과가 패소로 나오자 재판절차에 하자가
많았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법관이 아닌 비법조인이 재판에 간여했고 사법부가 독립돼있지도 않은 등
허점이 많아 제대로 재판이 진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중국에서 항소를 해봤자 다시 패소할 것이 뻔해 올초 "중국법원을
신뢰할 수 없다"며 국내 서울지법에 신용장대금 청구소송을 냈다.


<> 국내판결 =그러나 법원은 중국판결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법원의 판례를 존중, 사안을 검토하지 않고 원고청구를 기각했다.

서울지법 민사22부는 판결문에서 "국경의 개념이 갈수록 희박해지는
국제사회에서 모순된 판결이 나오면 국제법상 상호주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중국법원이 아직 우리판례를 승인하거나 부인한 사례는
없지만 상호주의에 입각해 이같이 판단한다"며 "하지만 중국법원이
우리판례를 거부하는 사례가 발생한다면 한국법원도 계속 상호주의를
유지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 손성태 기자 mrhand@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