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문동의 외국어대 앞에서 조그만 문구점을 열어놓고 있는 안우홍(35)
씨는 요즘 걱정이 태산 같다.

최근 몇년간 신통치 않았던 장사가 올들어서는 아예 죽을 쑤고 있기
때문이다.

다니던 중소기업을 94년에 그만두고 전 재산을 쏟아부어 시작한 생업인데
이 상태로라면 앞으로 2년을 더 버티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다른 업종으로 전환할까 고려도 해 봤지만 옆집을 보면 그마저 쉽지 않은
듯 하다.

옆집은 권리금 2천만원을 포기하고 가게를 내놓았지만 1년째 팔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문구점을 때려치우고 작년부터 택시운전기사로 나선 길 건너편 가게의
김씨가 이제는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안씨는 "우리는 대학교 앞이라 그나마 나은 편"이라며 "초등학교 앞
문구점들은 아마 줄초상이 났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문구점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

등교길이나 학교수업이이 끝난 후면 꼬마들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몰려와
코뭍은 돈으로 학용품과 눈깔사탕을 사던 모습들도 이젠 추억 속으로 점차
물러나고 있다.

문구소매상단체인 전국문구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2만여개에 달하던
문구점은 올들어 1만7천개 정도로 3천개 가량이 문을 닫았다.

용산구 보광동에서 문구점을 하고 있는 이 연합회의 이창송 회장은
"살아남은 문방구들 중에도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 곳이 태반"이라며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 한 영세 문구점들의 앞날은 캄캄하다"고 말했다.

문닫는 영세 문구점들이 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대형 할인점과 문구전문
유통업체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존립기반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닝글로리 바른손 등 문구전문 체인점에서 E마트 까르푸 등 대형할인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을 갖춘 쾌적한 분위기의 현대식 대형매장들은
문구점들의 꼬마손님들을 빼앗아가고 있다.

자연 매출부진에 허덕이는 영세 문구점들과 달리 문구전문업체들의 외형은
계속 늘고 있다.

모닝글로리의 경우 지난 98회계연도(97년 7월~98년6월) 3백50억여원이던
매출이 올해는 4백억원대로 늘어났다.

E마트도 서적을 포함한 문구 매출이 지난 97년 2백85억5천3백만원에서
지난해 3백97억8천만원으로 급증했다.

현재 전국에 2백여개의 문구체인점을 운영중인 모닝글로리는 앞으로 1백개
이상을 추가로 오픈한다는 계획이다.

대형업체들의 이같은 공세는 상대적으로 영세 문구점들의 폐업을 재촉하고
있다.

문구점들 사이에서는 대형매장이 하나 들어서면 반경 2km내가 초토화되고
만다는게 거의 정설처럼 돼있다.

수유시장 근처에서 30년 가까이 문구점을 운영해온 여도진씨는 "2년전
근처에 교보문고가 대형매장을 열고 난 후부터 매출이 곤두박질치고 있다"며
"옛날이 그립다"고 말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지난해부터 교육부가 초등학교에 학습교재비용을 일부
지원하기 시작하자 학교가 교재를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줘 발길이 더
끊겼다.

문구점 상인들은 장사가 가뜩이나 안되는 터에 교육정책의 불똥까지 안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부 방식이 바뀐 것도 문구점의 퇴장을 부추기고 있다.

컴퓨터 대중화를 등에 업은 디스켓, 프린터 등 첨단학습자재가 공책 연필
등 전통적 문구용품의 설 자리를 좁게 만들고 있는 것.

영세 문구점들의 쇠락은 서울 창신동의 문구도매시장에서도 그대로
읽혀지고 있다.

문구도매점 예지사의 오세인 사장은 "박스단위로 물건을 떼가던 소매상들이
이제는 낱개로 사가기 일쑤"라며 "그나마 발길마저 뜸해졌다"고 푸념했다.

< 김수찬 기자 ksc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6일자 ).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