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16일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모 음식점.

며칠전(8일) 취임한 이상경 이수세라믹 사장이 노동조합 간부들과 저녁식사
를 하고 있었다.

소주 몇순배 돌아가자 이 사장은 흉중에 있던 말을 꺼냈다.

"지금의 노사관계는 더이상 바랄 나위가 없이 좋습니다. 문제는 IMF사태
같은 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실을 다지기 위해서라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 임금도 동결해야하지 않을까요"

상견례 석상에서 부담스러운 이야기를 꺼냈다고 판단한 이 사장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순간 이 사장을 바라보던 정규문 노조위원장의 뇌리에는 여러가지 생각이
스쳤다.

올들어 문막공단 입주업체 40여개중 4개사가 임금을 올리면서 종업원을
감원했다.

몇년전 계속되는 누적적자로 회사가 존망의 기로에 섰던 기억도 떠올랐다.

곰곰히 생각한뒤 말문을 열었다.

"동결을 검토해 보겠습니다. 임금을 조금 올린 댓가로 일자리를 놓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대신 단 한명의 예외없이 모든 직원의 고용을
보장해야 합니다"

이 사장은 즉석에서 수용했다.

정 위원장은 "노사가 믿음을 갖고 지속적인 성장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2년째 임금을 동결하기로 합시다. 여기에 동의한다면 박수로 응답해
주십시요"

이것으로 이수세라믹의 99년도 임금교섭은 끝났다.

이수세라믹이 2년 연속 임금을 동결키로 한 것은 경영성과가 나빠서가
아니었다.

지난 상반기중 3백41억5천만원어치의 각종 소프트페라이트(금속성산화물인
산화철과 산화망간 등으로 이뤄진 혼합물을 고온으로 구은 제품으로 TV,
모니터 등에 쓰임)를 팔아 29억9백만원의 경상이익을 냈다.

원화환율 급등 등으로 수출에서 반사이익을 올렸던 98년(27억6천2백만원)
보다도 많았다.

매출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주부사원들부터 하루 12시간 근무를 자청하는 등
전 임직원이 혼연일체가 된 결과였다.

지난해 8월 구성된 태스크포스팀은 생산공정을 개선, 생산량을 35% 늘렸다.

작업자가 자신이 만든 제품을 직접 검사, 불량품을 다음 공정으로 넘기지
않는 방법으로 1년전에 비해 불량률을 3% 떨어뜨렸다.

현장작업자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즉시 반영하는 "즉실천운동"도 한몫을
했다.

지난 7개월간 5천7백여건의 개선사례가 접수돼 약 5억원의 경비를 절약했다.

이같은 성과는 노조원에게 돌아갔다.

IMF체제 돌입이후 단 한명의 감원도 없었다.

임금도 올렸다.

이 사장은 올해 순이익이 20억원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임금동결 합의에도
불구하고 지난 9월 임금을 5% 인상했다.

회사측은 현장과 사무실 휴게실 등 10곳에 "신문고"를 설치, 불만과 애로를
수시로 파악해 개선할 정도로 사기진작에 신경쓰고 있기도 하다.

현재 전세계 소프트페라이트 제조사중 랭킹 4위인 이수세라믹의 목표는 오는
2005년까지 기술수준에서 세계1위로 도약하는 것.

차세대 핵심소재 산업을 선도하기 위해 매출액의 9%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 최승욱 기자 swchoi@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