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없었다. 오해와 논란으로 부담도
적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더없이 편안했다. 한국은 나를 스타로 키워준
나라다"

7년반동안의 한국생활을 마감하고 다음달 중순께 일본으로 떠나는
자딘플레밍증권의 스티브 마빈(44) 조사담당 이사.

그에게 한국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나라다.

그는 한국에서 비로소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공부한 "일본통"이지만 한국에 와서 전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마빈 이사는 최근 한국증시에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중 하나였다.

"마빈 주가"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장중에 "마빈 이사가 이렇게 주가를 전망했다더라"는 루머에 종합주가지수가
춤을 추기도 했다.

한국 경제를 "난도질"하는 날카로운 분석 보고서는 재경부에 비상을 걸기
일쑤였다.

지난해 5월초-,

한국에 제2의 금융위기가 오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인 "죽음의 고통(Death
Throes )"은 국내외 금융권을 뒤흔들어 놓았다.

주가 300선이 붕괴될 것이라고 예측한 내용도 큰 파문을 일으켰다.

실제 한달여 뒤 주가는 280선으로 곤두박질치는 수모를 당했다.

이후 증시는 그가 다음에 어떤 보고서를 내놓을지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일부 일반투자자와 증권사 직원들은 "한국주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외국인
투자자와 결탁, 보고서를 쓴다"는 오해의 집중포화를 가했다.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라는 국내 애널리스트들의 비난까지 감수해야 했다.

"흔들리지 않고 내 나름대로의 분석 틀을 견지하면서 한국의 거시경제와
증시를 분석했다고 자신한다"는 게 그의 변명아닌 변명이다.

아시아머니지나 외국투자자들이 한국시장을 가장 잘 분석하는 최고의
조사분석가로 주저없이 그를 꼽았던 배경이었다.

그동안 국내 증시나 경제에 대해 비판적 시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길
꺼렸던 국내 애널리스트들로부터 시기섞인 부러움을 사는 이유이기도 했다.

마빈 이사는 지난 94년 쌍용증권(현 굿모닝증권)에 입사하면서부터 화제를
몰고 다녔다.

최초의 외국인 조사담당이사였는데다 당시 연봉이 1백만달러라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국을 떠나는데 확인해달라고 하자 "노 코멘트(No comment)"라고
했다.

국제금융계의 큰손 조지 소로스펀드의 펀드매니저였고 자딘플레밍증권
일본지점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 4명과 헤지펀드를 설립한 게 그가 일본으로
가는 까닭.

자산운용규모가 8억달러인 펜타 인베스트먼트라는 이 헤지펀드에 주요
주주(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자산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 이코노미스트를 겸할 계획이다.

한국을 떠나지만 더더욱 한국과의 인연을 끊을 수 없게 됐다고 한다.

"한국을 떠나는 게 아니다. 올 연말이나 내년초부터 한국주식에 적극 투자할
예정이다. 내돈을 직접 투자하는데다 고객들의 자산을 운용하는 이상 전보다
더 열심히 한국경제를 파헤치고 분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한국은 희망이 있는 나라"고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시장"이라고.

< 김홍열 기자 comeon@ >

< 스티브 마빈 약력 >

<>55년 미텍사스주 출생
<>77년 스탠퍼드대 아시아과 졸
<>82~83년 일본산업성 해외언론 대변인
<>92~94년 자딘플레밍 증권 서울지점 조사담당이사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