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열린 포항제철의 주주총회는 색다른 의미를 지닌다.

민영화를 앞두고 공기업으로서 열인 마지막 주총이어서다.

포철은 금년중 완전 민영화된다.

소유구조가 바뀌는데 따라 새로운 경영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선 공급과잉문제도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유상부(57) 포철 회장은 포철의 미래를 다시 설계했다.

민영화를 발전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뜻에서다.

93년 타의로 포철을 떠났던 유 회장은 지난해 3월 최고사령탑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밖에서도 포철을 바라봤던만큼 그는 누구보다 포철이 나아갈 길을 잘 알고
있다.

유 회장은 이번 주총에서 자신의 청사진을 펼쳐 보였다.

위기극복을 위한 구체적인 해법도 함께 제시했다.

그는 "걸어다니는 제철소"로 불린다.

그 정도로 철강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지녔다는 뜻이다.

그가 이제 새출발을 다짐하고 나섰다.

본사 최필규 산업1부장이 삼성동 포스코센터에서 17일로 취임 1년을 맞는
유 회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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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주년을 축하드립니다.

포철을 떠난지 5년만인 작년 3월 최고경영자로 돌아왔을때 감회가
새로웠지요.

마치 친정에 돌아온 느낌일텐데요.

<>유 회장 =회장취임을 두고 여러 얘기들이 있었습니다.

정치적 복귀라느니 화려한 컴백이라는 표현도 있었지요.

정작 어느것 하나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채 일본에서 귀국했습니다.

취임전 삼성재팬에 근무할땐 삼성을 위해 모든 역량을 쏟는다는 생각뿐
이었어요.

갑자기 포철에 돌아와보니 많은 변화가 느껴졌습니다.

나라경제 전체가 위기에 빠졌을 때였고 특히 철강업은 중증을 앓고
있었어요.

포철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기초체력이 튼튼해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포철을 떠날 당시만 해도 없었던 문제가 생겼다는 말씁입니까.

<>유 회장 =미래 수요에 대한 정확한 예측없이 과잉투자가 이뤄졌습니다.

포철은 지난 31년동안 총 26조원를 투자했어요.

그중 40%가량인 11조가 최근 5년새 투자된 금액입니다.

92년까지 15조를 투입해 2천2백만t 조강생산체제를 갖췄는데 6백만t의
생산능력을 확충하기 위해 11조를 쓴 셈이에요.

딱히 누구의 잘못이라기 보다 버블경제의 한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영환경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지않은 고민을
했습니다.

위험부담을 하나씩 따져가며 국내외 투자계획을 전면 수정했지요.


-변치 않은 것들도 있지요.

이를테면 포철맨의 정신인데...

한때 박태준 회장시절 쓰러지는 날까지 철강에 생애를 바치고 같이 무덤에
들자는 얘기도 있지 않았습니까.

<>유 회장 =그런 얘기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포철에서 죽을 줄 알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서울 구치소로 끌려갔고..

포철맨은 영원히 포철에서 삽니다.

그래서 사심없이 일할 수 있습니다.

조직응집력도 다른 기업보다 강합니다.

지난해 어려운 경영환경에서 더많은 이익을 거둔 것도 이런 응집력
덕분입니다.

복리후생이나 기득권을 포기하면서도 2백55억원의 실업기금을 낸 포철맨의
정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민영화를 대비해 글로벌 전문경영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입니까.

<>유 회장 =그동안 포철이 관료주의 색채가 강하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포철주식의 상당부분이 외국인에 팔려가는 것을 보자 오히려
불안해 합니다.

특정기업이 경영권을 차지하고 배타적인 경영을 하게되면 공공성이 퇴색할
것이란 애정어린 우려에서지요.

그래서 1인 대주주의 횡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경영형태를 갖추자는
뜻에서 글로벌 전문경영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한것입니다.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책임지고 하되 이사회를 통해 이를 감시하자는
취지입니다.

이사회 기능을 강화하기위해 사외이사 비중을 절반이상으로 높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미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선진적인 경영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주총에서 정관변경 등 여러 조치를 했습니다.

그렇다고 완벽한 방어수단을 강구한 것은 아니지요.

역시 최후 보루는 언론뿐입니다.

언론에서 특정세력의 경영권탈취시도를 보도하면 공동방어전선을 구축할 수
있으니까요.


-우호주주를 형성하려는 것도 같은 취지입니까.

<>유 회장 =이미 상당한 우호주주층이 형성돼 있습니다.

수요업체중 1%가량의 포철주식을 시장에서 산 기업도 있습니다.

포철은 앞으로 수요업체 외에 국내외 기관투자가 및 원료 구매선 등을
우호적인 투자가로 끌어들일 계획입니다.

글로벌전문경영체제가 조기에 정착되면 주주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어
우호주주를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소 시일이 필요한 작업들입니다.


-수요업체들은 포철이 민영화되면 생산 및 판매전략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유 회장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제품가격을 올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고객중심의 서비스를 강화하게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고객의 가치를 중시하지 않고 고객의 이익을 희생시키면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은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는게 저의 경영철학입니다.


-지난 70년 포철에 입사한 이후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위기를 극복해
왔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입니까.

<>유 회장 =광양으로 제 2제철소 입지를 선정할 때지요.

하나의 입지를 결정할때까지 경제적 기술적 사회적 가치를 고루
따져봐야지요.

당연히 보는 사람 입장에 따라 수많은 갈등을 빚게 됩니다.

광양으로 입지가 선정되기까지 개인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물론 보람도 컸지요.


-입지선정부터 설비계획까지 주도해 광양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텐데,
과잉설비로 가장 홍역을 치르는곳이 광양제철소 아닙니까.

<>유 회장 =광양제철소는 92년 12월 최적의 설비로 완공(4반세기 대역사
종합준공)했습니다.

산업의 쌀인 철을 자급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지요.

물론 호경기때는 일시적으로 공급이 딸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자본집약적인 철강업의 특성상 부족한듯 공장을 풀가동해야
바람직합니다.

이같은 사실을 간과하고 많은 설비를 추가로 건설했습니다.

그중 일부는 영원히 빛을 못볼 것들도 있습니다.

5고로 미니밀 같은 설비의 특성을 따져 피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대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철강 전문가로서 철강업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미 정점을 지나 내리막을 걷는다는 분석도 있는데요.

<>유 회장 =어떠한 산업도 영원히 존속.발전할 수는 없습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가발 합판 신발 섬유 등이 산업을 주도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산업은 위축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낮아졌지요.

철강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포철도 그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다만 신사업을 육성할 경우 철강본업 정신이 퇴색하는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게 될까 걱정입니다.

좋게 말하면 철강업은 안정기에 들어섰습니다.

기업의 영속성 측면을 고려하면 안정됐을 때 미래 신사업에 투자를 하는게
좋습니다.

그래야 쇠퇴기에 대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난 91년 포스데이터 포스코휼즈를 설립한 것이나 이동통신사업에 참여한
것도 이런 취지에서였지요.

당시 이구택 사장이 신사업본부장을 맡아 정보통신은 물론 다양한 신사업을
검토했었습니다.


-신세기 통신의 경영권을 단일화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통신업체로
키울 계획은 없습니까.

<>유 회장 =정보통신사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신세기통신 사업자로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기지국 건설 및 주파수방식과 휴대폰 메이커선정과정에서
코오롱측과 많은 의견차를 보였던게 사실입니다.

힘이 서로 반대로 작용해 시장을 더많이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어요.

서로 현명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경영권을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데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포철은 제값을 처주면 지분을 내줄 의향도 있고 상대의 지분을 사서
정보통신을 강화할 뜻도 있습니다.

두가지 대안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포철이 그동안 쌓은 경영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는 유망사업은 무엇입니까.

<>유 회장 =가장 좋은 예가 에너지사업입니다.

포철은 에너지소비가 많은 기업이지요.

국내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의 8%를 쓰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에너지마켓에 대한 특성을 파악하게 됐고 구매노하우를 갖추게
됐지요.

더욱이 포철은 에너지를 취급할 수 있는 항구와 야드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영자원을 제대로 활용, 에너지사업을 벌이기 위해 LNG터미날을
세우는 것이지요.


-포철 회장말고도 철강협회 회장 전경련 부회장 등 공식 직함을 10여개나
지니고 있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유 회장 =솔직히 많이 바쁩니다.

일이 많을 때는 잠을 2,3시간밖에 못잡니다.

그래도 견딜만 합니다.

하느님이 희안하게 사람몸을 고안한것 같습니다.

그래도 스트레스를 풀어야 할 땐 가끔 바보가 돼지요.(웃음)

사람이 모자라서 그런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면 피로가 풀립니다.

특히 퇴근하면 안사람과 사소한 얘기를 하길 좋아합니다.

요즘에는 같이 사는 며느리와 이런 저런대화를 할 때 세상 시름을 잃게
된답니다.


-취미생활을 할 짬은 있습니까.

<>유 회장 =예전에는 바둑 체스 장기 등 잡기를 무척 좋아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시간이 없어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유일한 즐거움은 승용차안에서 우주천제의 신비나 미생물의 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 비디오를 감상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고고학 책도 읽고 있습니다.

-그런 분야에 관심을 갖게된 동기라도 있습니까.

<>유 회장 =기독교 신자라서 그런지 우주 빅뱅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우주는 어떻게 생성했고 인간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아는게 얼마나 흥미
진진합니까.

저는 크리스찬이라 이 모든 것들이 다 하느님 뜻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별의 탄생과 사망과정을 지켜보면 희한한 질서를 느낄 수 있어요.

10억분의 1의 나노스 세계에도 신기할 정도의 질서가 있습니다.

사람몸에 있는 염색체내 DNA의 염기서열을 밝혀내기 위한 노력을
보면 절로 감탄하게 되지요.

고고학은 인류역사의 발자취와 진화과정을 아는데 도움이 된답니다.


-우주에 대한 신비를 느끼면서 경영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도
있습니까.

<>유 회장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물을 보는 관점이나 의사결정을 할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믿어요.

특히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게 돼 경영상 큰 오류는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주의 신비를 보면서 때론 자신이 외소하다고 느낄때도 있었습니다.


-한국경제신문은 기업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6시그마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포철이 추진중인 PI(프로세스 이노베이션)운동도 취지나 방법에 있어
6시그마 운동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이런 운동이 더욱 필요하겠지요.

<>유 회장 =21세기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6시그마운동이든 PI든
품질관리운동을 펼쳐야 합니다.

우리 기업에는 경영자원을 낭비하는 절차와 단계가 많습니다.

이를 체계적으로 없애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포철은 생산 인사 노무 등 모든 영역에서 최적의 경영환경을 만들고 이를
전체로 통합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제조업을 지나치게 생산중심으로 경영하면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상실할
것입니다.

이제는 사고의 출발점을 바꿔 고객중심으로 모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만들줄 몰라서 망한 회사는 많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고객이 외면하면 시장이 없어져 설땅을 잃게 됩니다.

한국경제신문이 추진하는 6시그마운동이 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데
기여할 것으로 믿습니다.

< 정리= 이익원 기자 ik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