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초 서울 영등포구 신도림동 K아파트로 이사온 구영미(31.회사원)씨.

구씨는 이제까지 단독주택에만 살아왔기에 상대적으로 사생활을 더 보호받을
수 있는 아파트 생활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그 기대는 이사온지 일주일도 채 안돼 보기좋게 깨지고 말았다.

방해자는 스피커폰이었다.

거실벽에 설치된 스피커폰을 통해 들려오는 소리는 이만저만 시끄러운게
아니었다.

의류 세일, 먹거리 행사, 각종 공지사항, 심지어 게시판에 안내문이 있기
때문에 별도로 방송할 필요가 없는 내용까지도 스피커폰은 꼬박꼬박 챙기고
있었다.

주말에 잠시 쉴라치면 스피커폰이 울어대 잠시라도 가만 놔두지를 않았다.

부녀회를 찾아가 항의를 해보았지만 새로 입주한 아파트라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서울 목동 아파트에 살고 있는 김순희(30.주부)씨의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현재 산후조리중인 김씨는 스피커폰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밤새 아기를 돌보다 지쳐 낮에 잠시 잠을 청해보지만 느닷없이 찾아드는
불청객에 방해를 받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매주 목요일은 아예 애기를 데리고 멀리 친정으로 피난을 간다.

이날 아침 7시 주민참여 쓰레기 분리행사 안내방송을 시작으로 오후까지
2시간 간격으로 "친절방송"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막을 길 없는 이 "무법자"에 애기는 경기를 할 정도다.

김씨는 최근 관리사무소측에 한통의 편지를 썼다.

"위층에서 물건을 옮기느라 쿵쿵거리는 소리도 참을 수 있습니다.

문앞에 수북히 쌓이는 전단지도 재활용하는 지혜로 견디겠습니다.

엘리베이터내 불쾌한 냄새도 계단을 이용하면 버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느닷없이 울려대는 스피커폰 공해는 대책이 없습니다.

제발 줄여주세요"

사생활을 침해하는 스피커폰.

주민홍보는 엘리베이터 앞 게시판을 이용하고 스피커폰은 단전 단수 소독 등
극히 제한적인 사항 외에는 자제되어야하지 않을까.

< 김동민 기자 gmkd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