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규모 35조원의 재계랭킹 4위 대기업" "병든 기업을 위한 나이팅게일"

법정관리와 화의 파산사건을 전담해 온 서울지법 민사합의 50부가 그동안의
화려한 수식어를 뒤로한 채 이달말이면 평범한 재판부로 돌아간다.

대법원이 22일 파산 1부와 2부를 신설, 그동안 50부가 맡아왔던 법정관리와
화의파산사건을 담당토록 하고 50부는 가처분사건만 전담토록 했기 때문이다.

80년대초부터 90년대까지 존속해온 민사 16부를 전신으로 하는 민사 50부는
한국기업의 흥망성쇠를 지켜봐온 "경제 재판부"였다.

경기가 어려울 때마다 50부를 찾아 "재기의 기회"를 호소하는 기업들이
줄을 이었다.

판사들은 사업에 실패한 기업주의 눈물 어린 사정을 들어야했고 채권자들의
입장도 감안해야했다.

법정관리신청 이후 자살한 기업주, 연쇄도산하는 중소기업, 회생프로그램
에도 불구하고 결국 파산하고만 기업들...

이들 "눈물로 쓴 기업사"는 1백권의 책으로 엮는다 해도 부족할 것이라는게
이 재판부를 거쳐간 판사들의 공통된 얘기다.

특히 IMF 외환위기 이후 50부는 절정기를 경험해야 했다.

연쇄부도의 충격파속에서도 조금만 시간을 더주면 살아날 수 있다며 50부를
찾아 법정관리나 화의를 요청하는 기업이 80곳을 넘었다.

이 정도면 10년간에 걸쳐 들어올 정도의 기업 수.

IMF 이전에 들어와 있던 60여개와 합하면 무려 1백40여개사의 운명이 3명의
50부 판사 손에 달려있는 셈이다.

이들 중에는 기아 한보 진로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들도 포함돼 있다.

그래서 영국의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지는 50부를 빗대어 "IMF후 한국에서
유일하게 번영하는 재벌"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런 탓에 50부는 비난과 칭찬이 오가는 극단적 평가를 받았다.

50부의 회생프로그램을 거쳐 기업이 살아나 법정관리를 명예롭게 졸업한
경우 50부는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법정관리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살아나지 못한 때에는 살아날 가망성
이 없는 기업을 법정관리시켜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제 50부는 모든 "계열사"를 파산부로 넘기고 민사수석부로서 본연의
임무에 복귀한다.

50부의 구조조정은 지난해 세계은행(IBRD)이 20억달러의 구조조정차관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파산법원 신설을 요구한 데 따른 것.

대법원은 IBRD의 조건과 예산 등 현실적인 여건을 종합 검토해 결국
파산법원과 동일한 성격의 독립재판부를 신설키로 결정했다.

파산부는 2개 전문부서로 분리돼 각각 부장 포함 3명의 판사들로 합의부를
구성한다.

파산1부는 법정관리사건을, 2부는 화의 및 파산사건을 전담한다.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부실기업을 신속히 처리하라는 요구가 적지
않았다"며 "파산전문 재판부를 신설함으로써 전문성을 제고하고 사건처리도
보다 신속히 할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결국 50부도 경제여건의 변화속에 구조조정을 당하는 비운 아닌 비운을
맛보게 된 것이다.

< 손성태 기자 mrhand@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