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 김고집바지락 즉석칼국수 사장 >


"너무 억울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온 인생인데요.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서울 성내동에서 칼국수 집을 운영하는 김정호(48)씨.

그에겐 올해가 특별한 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락으로 추락하기도 했고 "홀로서기"에 성공해 인생유전
을 톡톡히 경험해서다.

불과 얼마전만 해도 김씨의 직함은 동화은행 서교동 지점장.

그런 그에게 지난 6월 불어닥친 은행퇴출은 한마디로 청천벽력이었다.

김씨는 즉시 지점장대표를 맡아 퇴출반대투쟁의 선봉에 섰다.

퇴출기준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고용보장을 호소했다.

그러나 대답없는 메아리는 상실감으로 변해 그를 짓눌렀다.

피곤에 지쳐 명동성당 담벼락에 쭈그려 앉아 잠이 든 그의 모습은
"퇴출가장"의 안쓰런 상징으로 대문짝만한 일간지 1면 사진을 장식하기도
했다.

"농성을 마치고 을지로를 걷고 있었지요.

교회에서 무료 급식소를 열고 있더군요.

식판을 들고 쭈빗쭈빗하니까 누가 부르더군요.

그분은 때묻은 커피잔에 소주를 반컵 부어주며 당신은 고생을 별로 안하고
살아온 것 같은데 밥먹고 사는 건 저 사람들과 똑같다며 충고하더군요"

이 한마디에 그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느꼈다.

남부럽지 않게 지내온 자신의 역정을 잊고 철저히 몸을 낮추면 얼마든지
길이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제일 먼저 떠올린 건 칼국수 집.

누구나 부담없이 쉽게 먹을 수 있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삶에 대한 치열한 투지는 재기의 밑거름이 됐다.

칼국수 조리법을 직접 익히기 위해 "명동 칼국수" "김가네 칼국수" "유가네
칼국수" 등 전국에서 내로라는 음식점은 다 돌아 다녔다.

아침을 거른채 점심과 저녁은 두번씩 네끼를 칼국수로 떼웠다.

서울 연희동에선 주방을 기웃거리다 멱살을 잡히기도 했다.

집에 돌아오면 비릿한 밀가루 냄새가 입에서 올라와 밤새 토하기도 했다.

이러기를 2개월.

체중이 무려 7kg이나 빠졌다.

국물의 비결을 캐기 위해 제부도와 월곶 등 바지락 산지도 수십차례
방문했다.

싱싱한 것을 고르기 위해 바지락을 두 손 가득 움켜 쥐고 흔들다 보니
손톱이 다 닳았다.

너무 고달파 부인 이남희씨를 부등켜 안고 여러 밤을 울며 지새웠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이제 그는 일류 조리사가 돼 있다.

지난 10월 문을 연 "김고집 바지락 즉석 칼국수".

명예를 걸고 고집스럽게 최고의 음식맛을 보여 주겠다는 그의 철학이 상호에
담겨 있다.

평일 하루매상은 4천원짜리 칼국수 1백20 그릇.

바지락에서 우러나온 시원한 국물과 쫄깃쫄깃한 면발이 알려져 금방 강동의
명소가 됐다.

점식시간엔 자리가 없다.

토요일과 일요일엔 종일 북적인다.

하루도 빼지 않고 찾는 단골손님이 늘고 멀리 분당 일산에서도 소문을 듣고
찾아 온다.

"한때 화이트칼러론 A급이었지만 이젠 F까지 눈높이를 낮췄습니다.

여기서 10%씩 성취감을 높이면 다시 A급 인생이 되겠지요".

그의 평온한 미소속에서 이제 IMF의 어두운 그림자는 사라졌다.

*(02)478-1539

< 김태철 기자 synerg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0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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