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아침에 직장이 없어진다면...".

지난해 IMF관리체제 이후 직장인들이라면 한번씩 자신에게 던져보는
질문이다.

레이져 프린터 전문회사인 베리텍의 남무현(34)사장도 그중 한명이었다.

남사장은 지난해 12월까지 큐닉스컴퓨터 연구소의 프로젝트 매니저였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가 부도 났다.

자회사인 할부금융사에서 발생한 대량부실채권이 지급보증을 선 모회사
큐닉스컴퓨터까지 쓰러뜨렸다.

졸지에 대학졸업 후 10년 넘게 다니던 회사가 없어진 것.

남사장은 전직이냐 창업이냐를 놓고 고민했다.

대부분 동료들은 경쟁업체인 삼성전자나 신도리코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국내 최초로 레이저프린터를 자체 개발한 기술력과 노하우가
아까웠다.

대기업이긴 하지만 후발업체에 전직하는게 자존심도 상했다.

"레이저프린터라면 자신 있는데."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큐닉스에서 근무하면서 자신이 직접 사업내용을 기안하고 제품으로 실현해
오면서 맛보았던 뿌듯함을 대기업의 거대조직에서는 느낄 수 없을 것 같았다.

창업을 결심했다.

그러나 개발파트만으로 회사가 성립될 수는 없는 일.

마케팅 영업 제작 자재 개발 5개 부서의 과장급 중간관리자들을 모았다.

각자 퇴직금을 털고 예금통장을 모았다.

이렇게 1억원씩을 모아 자본금 5억원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이 돈으로는 사무실 임대조차 쉽지 않았다.

큐닉스컴퓨터의 경영진을 찾았다.

개발기기와 생산장비, 사무집기를 싼 값에 인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했다.

이렇게 해서 베리텍이 탄생했다.

베리텍이 통과해야 할 첫번째 관문은 큐닉스의 판매망 재건.

갓 태어난 기업의 신뢰도가 문제였다.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

기존 판매망을 돌며 큐닉스처럼 제대로 된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추가자금도 확보됐다.

신용보증기금의 자회사인 신보창투로부터 3억원을 지원받았다.

큐닉스의 핵심기술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고 꾸준히 설득한 결과였다.

신보창투의 지분참여로 기업공신력도 높아졌다.

신용장 개설도 이 때 비로소 가능해졌다.

기존 거래선도 하나 둘씩 되살아나고 있다.

남사장은 올해 매출목표인 60억원은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큐닉스컴퓨터와 베리텍은 닮은 점이 많다.

큐닉스는 지난 81년 KAIST 졸업생 5명이 함께 만든 벤처기업이었다.

베리텍의 창업자도 남사장을 포함해 5명.

출발도 비슷하다.

큐닉스는 당시 구로공단의 조그만 공장작업실에서부터 출발해 지난해
연매출 1천5백억원의 거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남사장은 큐닉스의 실패경험을 바탕으로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절대 당좌거래는 하지 않는다.

차입도 없다.

가능한한 현금거래의 비중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IMF는 저에겐 인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

IMF가 없었다면 10년이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할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IMF는 위기이자 기회인 셈입니다" 남사장의 "IMF관"이다.

< 이심기 기자 sg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4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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