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돌에 혼을 불어넣는 작업.

전북 익산에서 36년째 돌을 쪼아온 석공예가 권오달(53)씨.

그는 매일 매일 이런 마음으로 돌앞에 앉는다.

1천여점에 이르는 석불 석탑 석등 동물상 등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은
아직도 머리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자신의 손에서 길러진 자식과 다를게 없다.

그에게 10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 됐다.

이날 노동부산하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이 그를 공예분야 "명장"으로 선정
했기때문.

그는 예술성을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이 분야의 보배다.

"제2의 아사달"로 불리고 있을 정도.

전북 진안군 마이산 탑사의 미륵불, 전남 장성 백양산 약사암의 해수관음상,
삽교천 준공기념탑 등이 그의 손끝을 거쳐간 작품들이다.

그는 국립영화제작소가 만든 "백제의 향기"라는 홍보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1백26개국의 우리나라 공관을 통해 전통예술을 잇는 파수꾼으로 소개되고
있다.

한손에 정, 또 한 손엔 망치를 들고 벌이는 외로운 작업.

그러나 그의 손끝에는 연간 3억원이상의 수입이 묻어난다.

부가가치가 높은 건 물론이다.

불황의 그림자엔 그도 예외가 될 수 없지만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권씨의 오늘은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피나는 노력과 꾸준한 아이디어 개발이 어우러냈다.

고향인 경기도 양평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집안일을 거들던 권씨는 18세
되던 해에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상경했다.

그 첫 직장이 석재공장.

선배들이 하는 일을 어깨넘어로 배워나갔다.

이렇게 10년간 절구통 상석 비석 등을 만들며 정과 망치 다루는 "기술"을
배웠다.

그가 "돌일"을 "예술"로 생각하게 된 건 29세때.

익산의 전라미술석공장에 공장장으로 내려오면서부터.

이 회사의 이종천 사장(작고)은 설계능력까지 갖춘 이 분야의 달인이었다.

밤잠을 설치며 설계도를 그리고 틈나는대로 자신의 작품도 만들어봤다.

그에겐 "돌에 미친 사람"이란 별명이 따라 붙었다.

그러나 큰 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장인 멸시풍조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저격사건이 벌어진 79년 10월26일.

당시 그는 박 전대통령도 참석한 삽교천 준공기념탑을 만든 주인공.

1년넘게 밤을 새워가며 만들었건만 자신의 이름은 어디에도 오르지 못했다.

비문에는 서예가 김충현씨의 이름만이 덩그러니 올라있었다.

공사담당자에게 항의했더니 "잔디깎고 고랑파는 사람 이름을 먼저 적어오라"
며 모멸을 줬다.

그는 실력을 쌓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석공예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돌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날 그날 작업한 내용과 시행착오, 새로운 착상 등을 조목조목 적었다.

그는 지금 18년째 일기를 적고 있다.

이런 노력덕분일까.

81년초 탑사의 주지스님이 찾아와 미륵불 제작을 주문했다.

미륵불에는 그의 이름이 선명하게 올라있다.

"IMF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선조들의 장인정신을 되찾는게 급선무
입니다"

그는 오늘도 정과 망치를 들고 장인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 익산=남궁덕 기자 nkdu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