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아마조네스 ]

가정주부들이 일터를 찾아 쏟아져 나오고있다.

이들은 고급전문직에만 집착하는게 아니다.

보험설계인이나 외판원 파출업무 등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같은 현상은 IMF체제이후 두드러진다.

물론 대량해고시대의 부산물이다.

직장을 앓은 가장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다.

남편이 언제 직장에서 잘릴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전업주부들을 집밖으로
떠밀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현대판 아마조네스인 셈이다.

아마조네스는 아마존강에 살던 "여성전사"들이다.

사냥할 때 가슴이 불편하다해서 한쪽 젖가슴까지 도려냈다는 "맹렬전사"다.

남편의 실직이 넉달째로 접어든 성은미(33.서울 강서구 화곡동)씨는 지난
일요일 친척집 돌모임에 갔다가 백지 한 장을 돌렸다.

모인 사람들의 차량번호, 주민등록번호, 자동차 보험 만기일을 쭉
적어달라는 부탁도 함께 했다.

"민폐"를 덜 끼치기 위해 생명보험이 아닌 자동차보험을 택했지만 막상
부탁을 하는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남편은 지금 성남에 있는 직업훈련원에서 컴퓨터교육 합숙훈련을 한달째
받고 있다.

성씨는 아침마다 4살짜리 아들과 두살바기 딸을 구청 어린이 놀이방에 맡겨
놓고는 보험회사로 출근한다.

"재충전 기회로 삼겠다는 생각으로 뛰어들었지만 막상 돈을 번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은 몰랐다"고 성씨는 털어놨다.

그동안 남편의 어깨를 짓눌렀던 "가장"의 지위를 대신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IMF 한파를 헤쳐가기 위한 주부들의 "응원가"다.

H물산 부장이었던 박정규(46.서울 구로구 개봉동)씨는 "중년 주말부부"다.

그는 지난 4월 해직당한 뒤 인력은행 소개로 부산의 중소무역회사
수출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내 정해숙씨는 1주일중 3일가량을 일당 3만원짜리 파출부일을 하고 있다.

마음같아선 1주일내내 일하고 싶지만 일감은 없고 파출부를 하겠다는 사람은
많아 뜻대로 안된다.

예전에 한달에 1백만원을 줘도 사람이 없었으나 지금은 그 절반값에도
일하겠다는 주부가 널려있다.

주말은 남편 하숙집에 내려가 속옷도 빨아줄 겸 하루를 지내고 올라온다.

"신 이산가족시대".

대량해고와 함께 부부 자식간이 뿔뿔이 흩어져 사는 이런 모습은 더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다.

서울 구로공단에는 부모중 한 사람은 가출하고 다른 한 쪽은 지방에
일자리를 구하러 나가 사실상 폐가가 된 집이 1백여채에 이른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들어 경제활동에 새로 뛰어드는 여성이 한달에 10만명
가까이 늘고있다.

IMF이후 요구르트, 우유배달을 하는 주부들이 부쩍 늘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물건을 파는 주부들의 모습도 이제 낮설지가 않다.

생계때문에 등 떠밀려 비정한 사회로 내몰린 "핑크칼라"인 셈이다.

IMF는 "남성=생계부양" "여성=가사전담"이라는 역할분담을 깨지게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정반대의 역할도 해야하는 시대가 됐다.

< 이심기 기자 sg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