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풍속도가 바뀌고 있다.

그 방향은 마른 수건도 다시 짜는 검약이다.

자녀에 대한 애정을 선물과 외식으로 애써 과시했던 과소비가 사라지고
있다.

대신에 예금통장이나 수익증권통장을 선물로 주는 부모들이 많아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한파로 어린이날 소비패턴에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변화상은 최근 한국산업증권이 초등학생이하 자녀를 둔 직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 확인됐다.

지난해 어린이날만해도 자가용을 몰고 가족과 함께 유명놀이시설을 찾았던
나들이족이 많았다.

그러나 올해는 집 근처 공원 또는 전시장 고궁에서 놀겠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것도 걸어가거나 버스 또는 지하철을 이용한다.

동부주택할부금융의 H대리(32)는 5일 인근 보라매공원에 딸 3명과 함께
도시락을 싸가지고 놀러가 점심을 해결할 계획이다.

특선영화나 연극을 관람했던 가정은 아동용비디오테이프 시청으로 비용
절감에 나설 계획이다.

호텔 등 고급음식점에서의 외식은 이미 "옛날 이야기"다.

칼국수나 수제비 등 IMF형 가정특식이면 훌륭하다.

비싼 장난감을 사주거나 정장의류를 선물하는 가정도 줄어들고 있다.

하이트맥주 A차장(40)은 10세된 딸에게 2만원이 예금된 통장을 3일 주었다.

동원증권 K차장(33)도 6세된 아들에게 1만원이 입금된 수익증권통장을
선물, 저축습관을 키워줄 방침이다.

그는 "지난해까지만해도 만화비디오 등을 사준뒤 괜찮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며 "IMF시대 특성을 감안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어린이들의 기대도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며칠전부터 어떤 선물을 줄 것인가, 유원지에 가자고
졸라댔던 자녀들이 부모의 눈치를 살피면서 요구를 자제하고 있다.

그나마 어린이날에 쉴 수 있어 계획이나마 짤 수 있다면 행복한 편이다.

한솔그룹 구조조정사무국의 C과장(35)은 "검찰의 PCS수사로 금융기관의
대출금 상환요청이 쇄도하는 등 그룹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며 "경기불황으로
챙겨야할 업무가 산적, 일요일에 이어 어린이날까지 반납해야할 분위기"라고
말했다.

C과장의 불만도 최근 실직한 L부장(39)의 아픔에 비하면 그야말로"새발의
피"다.

사업이 망했거나 직장에서 해고당한 젊은 가장에게 있어 IMF시대
어린이날은 자신의 처량함을 곱씹게하는 괴로운 날에 불과하다.

L부장은 "아들(11)의 기를 살리기위해 뭔가 해야하는데..."라고 탄식했다.

<최승욱 기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