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에서 비롯된 대량해고 바람이 기혼자는 물론 약혼자들까지 남남으로
갈라놓고 있다.

실직 가정에서 가정불화가 잦아지고 급기야는 경제문제로 이혼하는 부부가
급증하고 있다.

심지어는 결혼을 앞둔 젊은 약혼자들이 정리해고 문제로 파혼을 당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서울 영등포에 사는 가정주부 이모(53)씨는 1일 서초동에 있는 한
법률사무소를 찾았다.

30년동안의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남편과 이혼절차를 밟기 위해서다.

지난해 12월 실직한 남편이 우울증에다 폭음 자녀학대 등을 일삼자
헤어지기로 결심한 것.

"재산도 다 필요없어요.

실직으로 더 괴팍해진 남편과 더이상 살 수 없어요"

이씨는 변호사에게 눈물반 한숨반으로 이혼 이유를 설명했다.

외환위기로 대량실업사태가 터지면서 이씨처럼 결혼생활이 벼랑끝으로
내몰린 부부들이 한 둘이 아니다.

실제로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이후 가정불화로 이혼한 사람이 눈덩이
처럼 늘어나고 있다.

올들어 3월말까지 서울가정법원에 협의이혼을 신청한 사례만도 무려
8천9백70건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6천8백91건에 비해 30.1%(2천79건)나 급증했다.

이중 7천6백17쌍이 법원의 허가를 받고 부부인연을 끊었다.

한 가구당 자녀수를 2명으로 계산할 때 무려 1만5천2백34명의 자녀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은 셈이다.

서울 서초동 법률사무소의 한 법무사는 "부부가 갈라서는 것은 성격차이나
배우자의 불륜 폭력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하기 때문이지만 IMF
구제금융이후 경제문제가 불거져 이혼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색다른 협의이혼"도 느는 추세.

부도위험이 있는 회사의 간부사원들이나 자영업자들은 재산을 아내명의로
돌려 놓은 뒤 협의이혼하는 사례도 있다.

회사부도시 아파트 등 재산압류위험에서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인 것이다.

시중 부도설이 나도는 상장기업 K사의 임원 최모씨도 최근 법률사무소에
들러 협의이혼 절차를 밟았다.

IMF로 인해 이혼이 재산지키기의 한 방편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까지 광고회사인 J사에 다니다가 정리해고를 당한 서모(30)씨는
최근 예정된 결혼을 한달 앞두고 파혼을 당했다.

이미 식장까지 예약을 해 둔 상태에서 갑작스런 IMF한파로 닥친 정리해고가
화근이 됐다.

서씨는 "IMF앞에서는 사랑도 별거 아니더군요.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결혼식도 못하고 너무 허망합니다"라고 말했다.

미혼 직장인들은 정리해고와 더불어 "결혼해고"의 공포에 시달려야 하는
시대에 살게됐다.

< 손성태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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