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2천원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이 1천4백원대로 떨어지고
"3월대란"도 단순한 설로 끝나면서 우리경제에 대한 낙관론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외평채 발행도 성공적으로 끝냈다.

그러나 금리가 아직도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기업의 연쇄부도우려는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턴트인 오마에겐이치 오마에&어소시에이트 회장을 만나
한국이 위기에 빠지게 된 원인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한국의 위기는 그동안 외부적 요인에만 의존한 안이한 성장 정책을
써온데서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위기수습을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창조적 혁신이 가능하도록 정책을 펴
나가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는 또 국제통화기금(IMF)이 자신의 권한을 넘어선 지나친 요구조건을
요구한다고 비판했다.

< 도쿄=홍찬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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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통화위기에 몰리게된 원인을 어떻게 보나.

한국경제의 취약성을 지적하는 "불가피론"과 동남아시아 통화위기가 확산
되면서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쳐왔다는 "날벼락론"이 있는데.

<>한국이 지난 10여년간 국제경쟁력을 키우지 못하고 원화약세-엔화강세의
외부적 요인에 의존해온 탓이다.

값싼 노동력과 엔강세를 바탕으로 한 가격경쟁력으로 1인당 국민소득을
1만달러까지 끌어올렸으나 그것이 "신기루"에 불과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중국과 베트남 동유럽등의 "저임금 추격"을 받은데다 엔화가 약세로
돌아서면서 한국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신풍"이 더이상 불지 않게 되자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10년전만해도 미국시장에서 날개돋친듯 팔렸으나 지금은
딜러조차 거의 없게 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일본이 세계의 비난을 무릅쓰면서도 혁신을 통해 10년마다 세계시장을
제패할 수 있는 제품을 계속 만들어온 것과 대조적이다.

-동아시아국가중에서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은 통화위기를
겪은 반면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혁신(Innovation)을 했느냐 못했느냐가 운명을 갈랐다.

대만이 대표적인 예다.

대만은 중국의 위협과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개혁을 거듭해
왔다.

정부는 특정 기업을 지원하지 않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 경쟁을
시킴으로써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만들어 왔다.

일본에서 25개에 달하던 오토바이 생산업체중에서 4개만이 살아남아 2개사
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것과 비슷한 과정이다.

반면 한국과 태국 및 인도네시아 경제는 정부의 지원이라는 온실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세계적인 경쟁에 부딪쳤을 때 힘없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지난해 한국정부가 보여준 위기예방과 사후대응 과정을 평가한다면 F학점을
줄수밖에 없을 정도다.

-한국국민들은 지난해 12월의 대통령선거에서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정부수립후 처음으로 여야간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김대중대통령은 당선직후부터 IMF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새정부의 경제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진정한 혁신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국민들의 "인내"만 요구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애국심에 호소해 수입품소비를 억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애국심과 인내만 강조하는 것은 케케묵은 사고방식이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한국경제 규모를 더욱 축소시키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다.

신정부의 정책은 제조업은 물론 서비스산업에서 근본적인 혁신을
이룸으로써 국민들이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국민들의 인내만 강조하기 보다는 어느나라 사람이든지 사려는 마음이
생기는 상품을 만들도록 하는 게 혁신의 출발점이다.

-혁신을 이루기 위해 새정부가 해야할 과제는.

<>우선 정책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국민들의 협조를 구한뒤에
새출발을 하는 것이다.

외면적인 세계화를 추진함으로써 기업들이 해외로 탈출해 산업구조가
공동화됐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분수에 넘치는 성장을 강조함으로써 달성한 국민소득 1만달러가 신기루
였다는 것도 부인해선 안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강력한 권력층(Power Ring)에
갇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취임초기에 90%가 넘는 지지율을 보였던 김영삼 전대통령이 임기말에
손가락질을 받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권력집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새정부는 출범전부터 의욕적으로 여러가지 개혁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재벌개혁"도 그중의 하나다.

대기업간의 "빅딜"을 요구하고 상호채무지급보증을 금지시켰다.

결합재무제표도 의무적으로 작성토록 했다.

새정부의 재벌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재벌개혁문제는 다른 어떤 과제보다 어렵다.

재벌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기 때문이다.

전직대통령들의 사례를 보면 안다.

집권초기에는 국민여론을 내세워 재벌 때리기에 나서지만 경제상황이
어려워지면 슬그머니 그만두고 말았다.

재벌문제는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전문화를 통해 국제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데도 이론이 있을수 없다.

-IMF가 자금지원조건으로 재벌개혁을 내세우고 있는만큼 한국 기업들로서는
좋든 싫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개혁에 성공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재벌개혁을 왜 하는지에 대한 목표와 진행단계별 시간표를 명확히 해야
한다.

재벌개혁은 IMF가 요구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고 한국경제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한단계 발전하기 위해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서 한다는
의식이 중요하다.

또 국민들의 여론을 의식해서 몇달 지나면 흐지부지될 정책으로는 재벌
개혁을 이룰수 없다.

정부가 강제적으로 끌고가는 것보다는 재벌개혁을 추진할 조직을 만들어
김대중 대통령과 재벌이 "파트너"로써의 바람직한 구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

1년이내에 계열사를 3-4개로 줄여야 한다는 식의 개혁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명문대학 졸업생들이 공무원(고시) 아니면 재벌기업에 취직하는 상황에서
재벌이 무너지면 한국경제의 대부분이 무너진다는 현실적인 상황도 받아
들여야 한다.

-새정부는 금융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11개 종합금융사를 인가취소하고 2개 증권사를 부도처리했다.

외환거래를 자유화하고 금융개혁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데, 금융개혁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현단계에서 한국정부는 일본의 엄청난 개인금융자산을 유치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일본의 예금금리는 연 0.35%인데 한국은 20%에 육박하고 있다.

고금리를 노리는 일본의 개인금융자산 1천2백조엔중 5조엔(약 50조원)만
한국으로 유입돼도 한국의 외환위기는 금세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정부가 일본자금 유치에 나서지 않는 것은 "직무태만"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금리가 20%를 넘나들면 아무도 기업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일반서민과 기업들은 더욱 빈곤해지고 부자들은 더욱 풍요롭게 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한국정부는 지난해말 소득세법과 법인세법을 바꿔 일본인이 한국의 주식에
투자해 얻은 차익에 대해 이중과세하지 않도록 하는 등 일본자금유치에 i
노력하고 있다.

일본자금이 한국으로 들어갈 때 아직도 규제가 많다는 얘긴가.

<>일본인이 한국의 은행에 예금계좌를 만들수 없는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과거에는 일본의 외환관리법으로 인해 일본측의 책임도 있었으나 지난
4월1일부터 신외환법이 시행돼 일본측의 제한은 완전히 없어졌다.

한국정부가 단안을 내리면 일본돈은 얼마든지 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고금리를 노린 일본자금이 한국에 몰릴 경우 언젠가는 한국의 국부가 유출
된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원화가치가 안정되고 고금리를 떨어뜨리는 긍정적 요인이
더 큰 만큼 그리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본다.

-자본거래에 대한 규제가 없어져 외국자금이 유입되는 것은 외환시장이나
주식시장의 안정성을 위협한다는 측면도 있다.

예컨대 국제적인 단기투기성자금인 핫머니나 헷지펀드들의 투기적 거래는
거시경제의 교란요인이 될 수도 있다.

<>헤지펀드의 투기가 일어나느냐 않느냐, 그리고 투기로 인해 위기가
발생하느냐 않느냐는 해당국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있다.

태국이나 한국이 헷지펀드의 공격을 받고 통화위기로 내몰린 것은 스스로
안고 있는 문제점을 억지로 "부인"하며 인위적으로 저지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반면 대만이나 중국, 홍콩 싱가포르 등이 비교적 위기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풍부한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헤지펀드들의 공격에 합리적으로 대응한
결과다.

-IMF가 한국과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 자금지원을 하면서 재정과 금융부문의
무리한 긴축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여러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데.

<>IMF가 자금지원을 하면서 경제구조개혁이나 정치적 문제까지 거론하는
것은 이상하다.

IMF가 자금지원을 한 것은 따지고 보면 이들 나라가 무너지면 세계경제
전체가 타격을 받기 때문이라는 측면이 더욱 크다.

그런데도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가족기업문제를 거론한다든지,
한국의 자본시장개방을 확대해야 한다든지 하는 조건을 다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것이다.

특히 이런 것들이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면 IMF는 이들 나라에서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문제해결을 위한 건설적인 어드바이스를 했어야 했다.

그것이 IMF의 설립목적과 부합하는 것이다.

-IMF가 시장개방등을 요구한 배경에는 미국의 압력이 있다는 주장도 끊이지
않고 있다.

<>IMF는 한국과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 위기가 오기전에 이들 나라의 상황을
정밀하게 연구해 오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한데 협상이 시작되자마자상당히 구체적인 요구를 내놓는 것을 보면 그런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IMF가 그런 로비에 따라 본래 기능을 넘어서면까지 가혹한 요구를
내놓았다면 IMF는 ILA(International Lobbist Association)라는 악명을 얻게
될 것이다.

< 도쿄=홍찬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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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 1943년 일본 후코오카현 출생
. 와세다대학 이공학부, 도쿄대학 공대대학원 졸업
. 미국 매사추세츠대(MIT) 원자공학박사
. 헤이세이정책연구소 소장
. 미 스탠퍼드대학 객원교수
. 매킨지 일본지사장 역임
. "Borderless World" "시대의 교대, 세대의 교대" 등 저서 70여권
. 이탈리아의 피오만즈상(87년) 등을 수상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