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 이제 나오지 마"

모제약회사 드링크제 광고의 한 장면.

새벽일을 따라나온 아들에게 환경미화원 아버지는 이 말로 정을 전한다.

훈훈한 이 카피는 그러나 직장인들이 서로의 처지를 역설로 동정하는
유행어가 됐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이후 직장인들의 허탈한 심정이 자괴적인
유행어를 양산하고 있다.

올해 입사한 새내기 직원들의 별명은 "아이스맨(ice man)".

거품이 다빠진 "기업 빙하기"에 들어온 탓이다.

1년전만 해도 신입사원은 한달간 술에 찌들었었다.

회사돈으로 먹는 회식에다 선배들의 축하연도 ''뻑적지근''했다.

요즘은 언감생심.

점심도 신입사원끼리 더치페이로 먹는다.

입사하자마자 월급은 삭감됐다.

다른 회사에선 신입사원부터 내보낸다는 소문까지 들린다.

가만 있어도 살이 떨린다.

그나마 이들 "아이스맨"은 "삼불문객"에 비하면 행복한 편이다.

바로 취업재수생들을 포함한 구직자들.

월급수준을 따지지 않고 계약직도 마다않으며 어떤 부서도 가리지 않는
이들을 인사담당자들은 이렇게 부른다.

"밤새 편안하셨습니까"는 철지난 유행어다.

요즘은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자탄이 자주 입에 오른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샐러리맨들의 불안감이 배어있다.

"뚜벅이"는 리바이벌 된 케이스.

"뚜벅 뚜벅" 걷는다는 뜻으로 자가용없는 총각사원들이 뚜벅이였다.

요즘은 주차비 지원도 없어지고 휘발유값마저 크게 올라 주변에는 온통
뚜벅이들이다.

<권영설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