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 야당 지도자인 김대중씨는 항상 외국 언론사의 주목을
받아왔다.

특히 LA타임스지는 선거운동기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당시엔 대통령
후보)와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박사의 인터뷰를 주선했다.

내용은 한국의 경제구조개혁과 한반도 평화유지및 통일방안.

김대중 후보의 승리로 선거가 끝난뒤 LA타임스지에 보도된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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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빈 토플러 =한국의 기업들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기위해 어떠한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요.

<> 김대중 당선자 =우선 제 철학은 당신의 저서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말해두겠습니다.

저는 옥중에서 "제3의물결"을 읽었습니다.

"미래의 충격" "권력이동" 등 당신의 저서들은 우리 모두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신은 이 책들을 통해 "소공동체화 (demassifying)"와 "분권화
(decentralizing)" 를 강조했습니다.

사회와 기업들에서 점차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소비자의 취향도
달라지는 탓입니다.

우리의 경제구조 역시 정부가 은행들을 통해 대기업집단을 통제해 오던
연결고리를 끊음으로써 "분권화"해야 합니다.

기업들은 시장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더욱 자유롭고 유연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최근까지 대량생산체제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양한 종류의 "소량-고품질 상품"을 생산하는 체제로
바뀌어야 합니다.

넥타이패턴이 매달 변화하는 이탈리아 패션산업은 여기에 맞는 좋은
예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같은 시스템을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이익중심 경영"을 위해 대기업들이 작은 단위로 조직을 쪼개는
미국식 시스템도 배워야 합니다.

<> 앨빈 토플러 =지금단계에서 적절한 대북(대북)정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김대중 당선자 =우선 한반도의 안보능력을 키워 전쟁을 억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일본과 중국,특히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최선입니다.

다음으로 북한이 남한에 의해 흡수통합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씻어내는
것입니다.

북한은 매우 호전적인 국가입니다.

그같은 호전성은 강한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약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에 그들을 흡수통합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시켜줘야 합니다.

우리는 다만 그들이 한반도 평화유지에 동의할 경우 언제라도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기 바랄 뿐입니다.

우리는 북한의 온건세력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북한을 흡수통합하려 한다는 인상을준 김영삼정부가 했던 것처럼 하면
강경파들에게 충돌의 빌미를 주게 됩니다.

그것은 곤란합니다.

새정부는 이른바 "햇빛정책"을 추진할 것입니다.

이 정책의 개념은 바람과 태양이 사람의 외투를 벗기는 경쟁을 하는 옛날
우화에서 따온 것입니다.

차게 불어대는 바람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외투를 더욱 조이게 만들
뿐입니다.

그러나 따뜻한 햇빛은 그가 자발적으로 외투를 벗게 만듭니다.

만약 북한의 개방을 위해 햇빛정책을 구사한다면 그들은 변할 것입니다.

"햇빛정책"이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닉슨 전 미국대통령의 중국방문은 중국을 미국및 다른 나라들과 협조적인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닉슨의 개방정책은, 당시 중국의 최고지도자였던 덩샤오핑이 정치권에서
많은 영향을 행사하도록 변화를 주었습니다.

중국은 그래서 마오저뚱 체제에서 시장경제체제로 변화해오고 있습니다.

베트남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패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새로운 햇빛정책으로 베트남이 조금씩 친미 국가가 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의 중국과 베트남은 북한이 따라야 할 잘못된 모델은 아닙니다.

그들은 공산주의의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경제쪽으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 앨빈 토플러 =일단 "햇빛정책"이 자리잡으면 통일을 위한 타임스케줄은
어떻게 됩니까.

<> 김대중 당선자 =우선 약 10년간은 남북한 양쪽 모두 현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각각 독립적인 체제를 유지하지만 둘 사이에는 평화로운 상호교류가
이뤄집니다.

두번째 단계는 이 정도의 기간이 지난후 전체 국민들의 투표에 의해
한명의 대통령과 의회를 가진 연방체제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도 양쪽은 서로 자율성이 허용되어야 합니다.

세번째 단계는 최종적으로 통일을 이루는 단계입니다.

물론 우리는 상황이 무르익을 때까지 인내를 갖고 기다리는게 필요합니다.

그 단계에 이르기까지 절대로 서둘러서는 안됩니다.

<> 앨빈 토플러 =당신이 만약 이번선거에서 승리한다면 냉전시대의
마지막단계에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됩니다.

때문에 냉전시대에 있었던 중국과 러시아의 거대한 체제이전의 성공과
실패사례를 심사숙고해야 할 것입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김대중 당선자 =중국에 있어서 사회적 안정은 핵심입니다.

중국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중국의 지도자들은 뭔가 움직이려고
할때 반드시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중국 지도자들은 국민들이 우선 변화에 적응하도록 준비합니다.

시장경제로 이행할 때도 그들은 아주 점진적으로 추진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적응할 시간을 갖게 됩니다.

중국의 개혁가들은 보수주의자들도 잘 다룹니다.

그래서 교조적인 마오저뚱 주의자들도 명예롭게 살수있도록 허용합니다.

대조적으로 고르바초프는 내국민들 사이에 컨센서스를 형성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대신 외국사람들의 관심을 이끄는데 더욱 힘을 쏟았습니다.

고르바초프는 또 경제개혁을 너무 서둘렀습니다.

이는 70년간 자본주의 경험이 전혀없고 의.식.주를 포함한 모든 생활이
중앙정부의 통제에 익숙한 사람들의 안전을 하루아침에 위협했습니다 .

결국 국민들의 확신부족은 고르바초프의 전반적인 계획을 실패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두나라 경험의 교훈은 한국에도 분명합니다.

"급하게 움직이지 말라, 붕괴와 불안정을 피하라, 점진적 단계적으로
나아가라, 가고자하는 방향의 각 단계마다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라"는
것입니다.

< 정리=육동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9일자).